THE VELVET UNDERGROUND & NICO – S/T(1967/1990, Sung Eum)

THE VELVET UNDERGROUND & NICO – S/T(1967/1990, Sung Eum)

1964년 싸구려 도색잡지의 이름을 따 결성된 밴드는 그리니치 빌리지의 카페 비자레에서 20세기 팝아트의 대가인 앤디 워홀과 만남으로써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앤디 워홀의 쇼인 <Exploding Plastic Inevitable>에 동행하면서 채찍질로 공연을 난장판을 만들었다. 워홀은 Nico를 밴드의 여성 보컬리스트이자 퍼커션 주자로 넣어 유명한 바나나 그림이 있는 첫 음반 <Velvet Underground & Nico>를 1966년에 프로듀스해주었다.

밴드의 싱어이자 기타리스트인 루 리드와 워홀은 사제지간이 아니라 동성 연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루 리드는 “I’m Waiting For The Man”에서는 헤로인을, “Run, Run, Run”에서는 코카인을, “Venus in Furs”에서는 피학성 음란증을 다루어 대부분의 곡들은 방송 금지가 되었다. 1973년 해산했지만 이들의 활동 시절 겨우 몇 백장만 나간 그들의 음반들이 1980년대 들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대중들보다는 뮤지션들이, 그들이 받은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재조명된 것이다. 이후 재결성 움직임들이 있었지만 1995년 스터링 모리슨의 병사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공연 이후, 이들의 재결성은 완전히 물 건너간 이야기가 되었다.

Nico
니코는 1960년대 전설적인 아티스트들과 낭만적으로 사귀고, 공동 작업을 한 매력적인 아티스트다.

그녀의 첫 경력은 유럽에서의 슈퍼모델로 시작한다. 1965년에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라 돌체 비타>에 출연하고 알랑 드롱의 아들을 낳는다. 그녀는 롤링 스톤즈의 매니저인 앤드류 룩 올드함의 눈에 들어 첫 레코딩을 하게 되는데 서포트 뮤지션으로는 롤링 스톤즈의 기타리스트인 브라이언 존스와 나중에 레드 제플린의 기타리스트가 되는 지미 페이지가 들어간다.
이후 그녀는 뉴욕으로 옮겨 앤디 워홀에 의해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1967년 데뷔 음반에 리드 싱어로 3곡을 취입한다. 그러나 밴드는 정규 멤버로 그녀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녀는 밴드를 나와 잭스 브라운과 루 리드, 존 케일의 어시스트로 음반 <Chelsea>를 낸다.

1969년에는 케일의 프로듀서로 암울한 고딕적 분위기의 <The Marble Index>를 발매하였고, 1970년에는 브라이언 이노와 필 만자네라 등의 아트 락 아티스트의 지원을 받아 음악 활동을 계속 해나간다. 그러나 마약과 난잡한 생활 등에 의해서 계속 망가지면서 라이브 음반들과 촬영 등은 상업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원조 고딕 라커로 날이 갈수록 그녀의 영향은 강해져 간다.

밥 딜런, 잭슨 브라운, 벨벳 언더그라운드, 롤링 스톤즈, 짐 모리슨, 이기 팝 등과의 환상적인 스토리는 그녀의 전기인 <Nico: The Life & Lies of an Icon, by Richard Witts>와 <The End, by James Young>을 통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