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L YOUNG AND STREETBAND – London Dilemma(1985, Compleat)

PAUL YOUNG AND STREETBAND – London Dilemma(1985, Compleat)

갑작스러운 성공이 찾아온 아티스트 일지라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나타나는 것은 아닌데 Paul Young이 바로 그러한 경우이다. 신디사이저를 사용한 소울 보이 장르의 솔로로 성공을 거두기 전에 그는 그들의 정수를 바이널에 기록한 두 밴드 -Streetband와 후의 The Q-Tips- 에서 노래를 했다. 양식적으로 Paul Young의 특징적인 사운드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지만 두 밴드 모두 충분한 음악적 가치는 있었던만큼, 폴영은 이 과거의 작품들을 재녹음하기 위해 수 차례 지난 레퍼토리에 손을 대 왔다.

Streetband는 영국의 “펑크/뉴웨이브” 운동기에 등장했지만 Sex Pistols나 The Clash와의 공통점은 매우 적었다. 그들은 어느정도 Free의 영향을 받은 좀 더 직선적인 로큰롤 밴드였다.(Paul Young은 그에게 처음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던 보컬리스트로 Paul Rodgers를 자주 언급하곤 했다.) 유일한 음악적 동기로 Squeeze가 있었는데 그들의 등장시기 때문에 단순히 뉴웨이브 밴드로 묶여서 언급되었지만 Squeeze는(Streetband와 같이) 기본적으로 팝/록 밴드였다. 사실 Squeeze의 키보디스트 Jools Holland는 Chaz Jankel(그는 Ian Dury’s Blockheads의 임시멤버였으며 작곡가로 약간의 명성을 얻었다.)과 Trevor Rabin(현재 Yes에서 연주하고 있는)의 레코드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었다. 골수 영국팬들이 알아차릴 수 있는 다른 유일한 이름은 드러머 Chaulkie로 그는 Mr.Big이라 불리운 뛰어난 post-Queen, pre-Police 밴드의 멤버로 차트의 낮은 순위에 등장했지만 차트를 장악하는데에는 실패했었다.

밴드의 다른 멤버들은 John Gifford (리듬기타), Roger Kelly (리드기타), Mick Pearl (베이스)이며 비록 그들이 메탈밴드까지는 아니더라도 데뷔싱글은 그들을 청중들에게 색다르게-그리고 아마도 불리하게-노출시켰다. “Toast”는 “Hold On”을 반전한 일종의 농담이었다. 그러나 영국의 몇몇 디스크 자키들은 이 곡을 더 선호했고, U.K. Top20에 이 곡을 밀었다. 결과적으로 밴드는 결코 록팬들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마지못해/할 수 없이 대중이 기대하는 다음 싱글들을 녹음했다. 첫 번째 앨범에서 두 장의 싱글들을 발매했고, 두 번째 앨범에서 다시 두 장의 싱글을 발매했으나 변덕스러운 영국팬들은 그들의 좋은 시절이 지나갔다고 판단했다. 밴드는 해산했고 폴 영은 베이시스트 Pearl과 함께 The Q-Tips라 불리는 밴드를 결성했으며, Streetband의 모든 의지와 목표는 역사로 남게 되었다.

상황은 끝이 났다.
지금까지, Paul Young은 자신을 입증하면서 언제나 정당한 메이저 스타의 위치에 올랐고 그의 초기작들의 재발매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이 트랙들은 지금의 Paul Young보다는 좀 더 거칠고 그의 역할이 밴드 내의 다른 멤버들의 개성과 절충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트랙들에서 그가 자신의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항상 노래할 수 있고, Paul Young의 이 초기 곡들은 당대의 훌륭한 기준이 되었다.

“Hold On” (그들의  첫번째 싱글 A-side 곡으로 전세계 어디서도 LP로 발매된 적이 없다)과 함께 이 두장의 레코드는 Streetband의 녹음된 곡들을 대표하고 있다. 어느 트랙도 이전에 미국에서 발매된 적이 없었지만, 지금 적절하게 제작됐고 – 농담 아니고 – 완전하게 – 다른 곳에서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

Jon Tiv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