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TENDERS – S/T(1980/1984, Sire/Real)

PRETENDERS – S/T(1980/1984, Sire/Real)

데뷔앨범.

Biography
출처 <핫뮤직>
영국 헤리퍼드 출신인 3명의 미국 젊은이와 미국 오하이오 출신의 여성 리드싱어 크리시 하인드는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 뉴웨이브 밴드를 결성해 많은 활동을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오리지널 멤버중 두명이 약물복용으로 82년과 83년에 사망하면서 시련을 겪기도 하였는데 크리시 하인드는 잔여 멤버인 마틴 챔버스와 함께 새로운 4인조 그룹을 결성한다.

크리시 하인드는 80년대 가장 인상적인 여성 보컬리스트이자 작곡자인 밴드의 핵심인물 이었는데 밴드 결성 이전 고향인 오하이오의 아크론에서 60년대 후반 뛰어난 연주실력과 작곡실력으로 명성을 얻었다. 크리시는 60년대와 70년대 록과 소울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틴에이저를 전후한 15년간 방대한 양의 음악을 듣는데 소비했으며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항상 곁에 끼고 사는 소녀였다. 1984년에 가진 Musician과의 인터뷰 내용을 통해 밝힌 그녀의 음악적 성장배경은 다음과 같다.

“나는 Sam The Sham &The Paraohs를 공연에서 보았으며 Jackie Wilson과 Yardbirds, 그리고 Rolling Stones의 스테이지를 보면서 가수의 꿈을 키워 나갔다. 또 Dennis Wilson (Beach Boys)이 공중으로 드럼스틱을 던지거나 한바탕 소동을 벌이며 등장하는 모습은 싫증나도록 보았으며 Mitch Ryder와 Detroit Wheels가 무대 위에서 주먹다짐을 하는것을 보았다.그러나 14살이 될 무렵 주먹다짐이나 싸움 등이 연출된 것을 안 뒤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어떻게 그런 모습에서 좋은 영향을 받을수 있겠는가?”

크리시는 십대에 접어들면서 좋아하는 보컬 스타일을 익히며 뮤지션으로서의 꿈을 키워나갔다. 이 시절에 대해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떻게 해야 노래를 잘 할수 있는지 알고 싶지 않는가? 내가 클리브랜드에서 처음 노래하기 시작했을때는 모든 작업이 끝난 후의 어느 한 작은 방에서 폐가 견딜수 있는 극한까지 소리높여 부르곤 했다. 당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청중으로 의자에 앉아 ‘이렇게 하면 되겠지’ 하고 마음속으로 상상해 보아도 소용이 없다.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발전이 없다는 얘기다. 가장 어려운 일중 하나가 자신이 갖고 있는 단점을 강점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스스로 채찍질해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마치 작은 턱을 가지고 있는 여성 싱어가 커다랗고 모진 턱을 갖은 사람을 부러워 하듯이 말이다. 당신이 갖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지 말고 잊어버리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이 최고가 됐을 때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부자연스러운 일들은 잊고 잘할수 있는 것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크리시는 기타를 배우기도 했는데 고향인 아크론에서는 더이상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생각한 뒤 20대 초반에 록의 본고장인 영국 런던으로 간다. 73년 자신 스스로 인생에 모험을 걸만한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한 후 런던으로 돌아온 크리시는 파트 타임 연주자나 웨이트레스 그리고 New Musical Express에 글을 쓰면서 몇년을 보낸다.

이 시기에 그녀는 Sex Pistols, Clash, Damned등 유능하고 젊은 그룹 멤버들과 친하게 지낸다. 결국 후에 Pretenders를 결성하게 되는 멤버인 James Honeymmon-Scott과 베이시스트인 Pete Farndon을 알게 된다.

78년 봄 크리시 하인드를 주축으로 두명의 멤버가 모여 Chrissie Hynde And Pretenders를 결성하게 된다. 이들은 곧 Read Records와 계약하게 되고 매니저로 레코드사 사장인 데이브 힐을 맞아들인다. 데뷔싱글 “Stop Your Sobbing”을 잘 알려진 Nick Lowe의 프로듀스로 내놓았는데 이곡이 영국차트 40위안에 들면서 짧은 시간에 확실한 이정표를 세운다.

밴드 내에 정식 드러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후 Martin Chambers를 네번째 멤버로 맞아들이게 되는데 Martin은 드럼스틱을 사기 위해 악기점에 들렀다가 제임스를 만나면서 친분을 갖게 된 뮤지션이다.모든 일이 순조롭기만 한 이때 제임스는 약물에 빠져 이후 밴드에 치명적인 충격을 안겨 준다. 78년 라인업이 완성된 후 영국 전역을 돌며 다이나믹한 콘서트를 벌인다. 이때 발표된 싱글 “Kid”는 베스트 셀러가 됐으며 “Brass In Pocket”은 차트 1위를 기록한다. 두 싱글은 80년대에 발표된 데뷔앨범「Pretenders」에 수록되어 Read Records에서 발매되었으며 미국에서는 Sire레코드사를 통해 발매됐다.「Pretenders」는 새로운 록의 사조로 평가 받으며 이후 10년간을 자신들의 해로 만든다. 미국의 유력한 음악지 Rolling Stone은 이들의 데뷔앨범을 록계에 길이 기억될만한 뛰어난 데뷔앨범이라 평하였다.

모타운 사운드를 보여주는 “Brass In Pocket”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Mystery Achievement”,그리고 사랑스러운 “Stop Your Sobbing”등 앨범 전체적으로 끝없는 즐거움을 준다.”

이 당시까지 여성이 록그룹의 전면에 나온다는 것을 생소하게 여기고 있던 때였고, 크리시 자신도 이런 음악 풍토에 의아해 하고 있었지만 Pretenders는 엄연한 그룹이었으며 크리시 하인드를 전면에 내세우는 홍보전략을 내세웠을 뿐이지 그녀를 위한 백밴드는 아니었다.

어쨌든 앨범「Pretenders」는 영국에서 1위를 기록했으며 미국에서는 골드 레코드를 기록했다. 그리고 미국과 유럽전역을 돌며 벌인 콘서트에서 개성있는 연주를 들려주며 관중들의 환호를 얻어냈다. 4월에는 또다른 히트싱글 “Talk Of The Town”을 영국과 미국에서 발매하였으며 같은해 11월에는 2집 녹음을 위해 프랑스 파리로 움직였고 다음해인 81년 8월에「Pretenders II」를 발표한다. 이 앨범에는 영국차트 10위를 기록한 감각적인 발라드 “I Go To Sleep”이 들어 있다.

월드투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을때 이미 이들에게는 불운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6월 14일에 피트 판든이 탈퇴의사를 밝혔으며 이틀 뒤인 16일에는 제임스 허니문 스코트가 약물과용으로 사망하게 된것이다. 피트 판든은 크리시 하인드와 연인의 관계를 맺고 있다가 나중에는 밴드내의 주도권 문제로 트러블을 일으키게 된다.83년 11월에 가진 New Musical Express와 가진 인터뷰에서 크리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피터와 나는 밴드를 출범시킬때 매우 가까웠다. 내가 말하는 뜻은 남녀간에 사귀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서로의 길을 가게된 이후로 우리는 더이상 상대방의 얼굴을 볼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이후 같이 연주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우리는 비교적 잘해왔으며 밴드를 처음 시작할 때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겉으로는 그렇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문제가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당시 상황을 모두 합산해 한마디로 얘기해 보라면 아는 ‘헤로인’이라고 말할 것이다. 당시 피트는 약물을 습관적으로 복용하고 있었으며 약물 없이는 연주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하지만 무대위에서 연주를 해야만 했으며 위태위태했지만 그런대로 다른 멤버들과 호흡을 맞출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약물에 점점 더 빠져들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며 약물에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 이후에는 제대로 연주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이것이 지미를 화나게 했다. 어떤 형태로 지미에게 영향이 왔는지 말할수는 없다. 여덟달간의 투어로 우리는 극도로 피곤하고 지쳐 있었다. 모두가 예민해 있었으며 마틴이 여덟개의 전등을 주먹으로 쳐서 잡혀있던 투어 계획을 취소해야 했다. 마틴은 평소에 밴드에서 중재역할을 하고 있던 멤버였는데 이런 일을 벌였다는 것을 보면 그때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짐작할 수 잇을 것이다. 허니문 스콧이 약물에 빠져 있을때 판든처럼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우리에게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다.”

사실 죽기전에 제임스는 그의 친구이자 기타리스트인 Robbie McIntosh를 불러 연주하는 모습을 보게 했다. 제임스는 밴드의 공연에서 트윈 기타 체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며 로비 또한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 결국 나중에 제임스의 자리를 로비 맥킨토시가 메꾸게 된다. 로비는 Foster Brothers, Chris Tompson, Island And Night와 작업한 경험이 있는 전천후 기타리스트였다. 그와 활동했던 Island And Night는 “Hot Summer Night”라는 곡으로 차트 20위에 오르기도 했다. 크리시와 마틴은 그룹을 재결성하기 전에 게스트 아티스트로 Billy Bremmer와 베이스에 Tony Butler를 받아들여 82년 7월에 “Back On The Chain Gang”을 발표해 미국차트 5위를 기록한다. 이곡은 후에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King Of Comedy》에 삽입되기도 한다. 82년 여름 크리시, 마틴, 매니저 데이브 힐은 Pretenders에 맞는 새로운 뮤지션을 찾기 시작한다. (피트 판든을 회상해 볼때 새로운 라인업 결성은 어찌보면 잘된 일이라고 생각된다. 만약 피트가 멤버로 남아 있었다면 83년 4월에 사망한 사건이 그들에게 또 한번의 시련으로 남을뻔 했다.) 새로운 멤버로 처음 들어온 로비 맥킨토시는 베이스 주자로 친구인 Malcom Foster를 소개했는데 그와는 전에 Foster Brothers라는 밴드에서 말콤의 형과 함께 활동했다.

크리시는 허니문 스코트 사건과 함께 첫아이의 출산으로 밴드의 활동 중단이라는 결과를 초래한다. 83년 Kinks의 레이 데이비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을 키우면서도 크리시는 한번도 밴드를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당시를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밴드를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런 얘기가 떠도는지도 몰랐으며 Pretenders에는 아직도 마틴과 내가 존재하고 있었다. 물론 짐이 죽은 뒤로 밴드 내에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만일 피트가 그 상황에서 우리에게 돌아왔다면 보다 커다란 문제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정을 해야 했고 피트를 방출하기로 했던 것이다. 짐의 죽음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을 져라’식의 방법론을 택한 것은 아니다.”

“멤버문제가 잠잠해진 후 임신으로 인해 심신이 피곤해 있었다. 누군가를 해고해야 한다는 것이 고통스러운 문제로 다가올지 몰랐다. 밴드의 기타리스트인 로비의 말을 받아들여 끊임없는 휴식에 들어갔으며 얼마후 새로운 기분으로 작업할 수 있게 되었다.”

83년 겨울부터 준비를 하기 시작한 밴드는 84년 초에 앨범을 발표하는데 대부분의 기간을 리허설에 소비했으며 겨울내내 앨범작업에 전력투구했다. 앨범 작업 당시의 상황을 인터뷰에서 다음처럼 밝혔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작업하는지 몰랐지만 우리는 조직적이고 정확하게 작업을 진행해 나갔다. 배킹 트랙(대개 리듬파트의 연주가 담겨 있다.)의 녹음을 위해 5, 6번씩 반복해서 연주했다. 녹음이 끝난 테입을 자리에 앉아 들어본 후 마음에 드는 연주를 찾아내곤 했는데 대개 4번째에서 6번째 사이에 괜찮은 드럼 필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곧 편집을 했고 다음에는 기타 솔로를 집어 넣고 편집하는 식으로 진행해 완성해 나갔다. 보컬을 제외한 모든 트랙이 완성되면 나는 그위에 보컬을 입히기만 하면 되었다.

베이스 트랙이 모두 완성된 후나 작업중에 틈틈히 보컬트랙을 녹음하는 식으로 진행했으며 모든 멤버가 한눈팔지 않고 스튜디오에서 작업에 볼두했다. ‘내가 맡은 베이스 파트가 끝났으니 다음주에 봅시다.’란 말은 우리에게선 볼 수 없었다. 어느 누가 잘못된 점을 지시하면 다같이 들어보고 고치는 식으로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멤버들 모두 납득할 만한 수준의 훌륭한 작품이 되었다.”

그리고 작곡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기초적인 코드와 가사로 진행한다. 그런 다은 조금씩 조금씩 고쳐 나간다. 베이스가 ‘buh duh dum don’으로 나가면 드럼이 ‘dah duh dah duh dah duh dah’로 따라가고 뒤이어 베이스가 다시 ‘duh duh dump duh duh dum ding ding’하고 울리고 뒤이어 기타가 ‘dah duh duh day’하고 또 한번 베이스가 ‘dunt dunt dunt’하는 식으로 연주하는 자체를 즐겼으며 나는 미치광이처럼 모든 파트에 따라 노래부르기 시작하곤 했다.”

84년말에 새로운 앨범에서 “Middle Of The Road”가 첫 싱글로 발표되었다. 85년에 1월에는 앨범「Learning To Crawl」을 Sire레코드에서 내놓게 되는데 곧 플래티넘을 획득했다. 앨범 타이틀은 크리시가 자신의 딸이 새 멤버와 함께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지었다고 한다. (4월에 크리시는 둘째 여자아이를 낳았는데 이번에는 아버지가 Simple Minds의 Jim Kerr였다.) Pretenders는 곧 월드투어를 시작했으며 관중들의 환호를 통해 예전의 개성적인 사운드를 확인했다. Pretenders는 네번째 정규앨범「Get Close」를 86년 말에 발표하였고 싱글 “Don’t Get Me Wrong”을 Top 10에 올려놓았다.

당시 크리시는 빠른 속도로 변모해 가는 음악계에 대처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며 딸들을 위해서라도 록 음악계에서 생존해야 겠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고 지미나 피트처럼 자기 자신을 죽이는 따위의 행동을 하지 않았다. 나는 인생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 둘울 잃었다. 두사람 모두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들 이었다. 이후 항상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이 존재하는 한 걱정할 문제가 아니란 걸 알았다. 그렇지만 자신을 암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항상 신경쓰는 정도는 했다.

약물따위를 과다복용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런 기분이 든다면 차라리 집에 가서 잠을 자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87년 Pretenders는 79년에서 86년까지 싱글들을 모아 만든「The Singles」를 발표했고, 90년에「Packed!」를 94년에「Last Of The Independents」를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