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E JACKSON – Look Sharp!(1979/1990, A&M)

JOE JACKSON – Look Sharp!(1979/1990, A&M)

Joe Jackson의 데뷔앨범으로 전체가 완벽한 일체감을 보여주고 있는 70년대 뉴웨이브의 명반이다. “Got The Time”은 후에 Anthrax가 커버했다.

Biography
출처 <핫뮤직>
Joe Jackson의 경력을 펼쳐보면 카멜레온 같이 전혀 다른 색깔로 변장한 그를 볼 수 잇다. 외관상으로는 광적인 펑크록커들 중에서 가장 음란한 말을 내뱉는 가수다. 넥타이까지 맨 정장에다가 뒷굽이 닯아빠진 구두를 신고 무대에 등장하는 것으로 통해 왔다. 혹은 차분한 오케스트라 단원이나 재즈 그룹의 차가운 키보드 주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수년이 지나 그가 작곡한 모든 곡에는 레게를 포함해 이러한 영향들이 반영됐다. 영국 Burton-Upon-Trent에서 태어났지만 그가 한살때 가족이 모두 Portsmouth로 이사를 갔기 때문에 그곳에서 자랐다. 천식이 잇었기 때문에 육체적 활동에 제약을 받았던 그는 어린시절을 음악에 몰두하며 지내게 됐다. 11살때 바이올린 레슨을 받으며 피아노를 독학하기 시작했는데 그가 말하길 그의 음악적 취향은 1960년대 중반에 비틀즈와 롤링스톤즈 같은 영국 그룹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클래식도 좋아했는데 특히 베토벤을 좋아했다.

10대가 되자 작곡을 하기 시작했는데 키보드로 서로 다른 멜로디를 조화시키는 시도에 몇시간씩 시간을 보냈으며 연주기법도 서서히 발전해 갔다. 가끔씩 악보에 가사를 붙이기도 하였으며 음악적 감각은 피아노에 대한 보다 많은 지식을 요구했으므로 16살에 정식으로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Portsmouth 선술집에서 음악일을 하게 됐다. 그후 Portsmouth에 있는 그리스 레스토랑에서 3인조 밴드를 결성해 재즈를 연주했다.

1972년에 그는 런던에 있는 Royal Academy Of Music에 입학허가를 받았다. 교제를 넓히기 위해 밤과 주말에는 지방밴드와 함께 당시 유행하던 Top 40곡을 연주했다. 그중 한 밴드였던 Misty Set은 발라드곡 “Misty”를 주제곡으로 사용했다. 군대, 지방술집, 디스코 클럽에서 그리고 National Youth Jazz Orchestra와 함께 했던 수많은 공연에서 연주실력을 인정받았다.

1970년대 중반에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친구인 Mark Andrews와 Arms And Legs라는 밴드를 조직했다. 하지만 매니지먼트 문제로 밴드는 1976년 해체되고 말았다. 환멸을 느낀 Jackson은 런던 Playboy Club에서 레코드를 만들기 위한 충분한 돈을 벌기 위해 일자리를 얻었고 카바레 공연물인 ‘Coffee And Cream’의 음악감독자리 같은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해 다녔다. 그는 계속해서 작곡했고 곡을 테입에 담앗다. 녹음을 위해 기타에는 Gary Snford, 베이스에는 Graham Maby 그리고 드럼에는 Dave Houghton을 모았다. 비록 그가 만들려는 데뷔앨범을 스스로는 마지막 쉴 곳이라고 생각하자고 마음 먹었지만 데모테입을 레코드 회사 간부들에게 열심히 돌렸다. 그중 하나가 1970년대 말에 영국에 있는 A&M 레코드사에서 프로듀서로 일하는 David Kershenbaum에 의해 발탁돼 계약을 맺게 됐다.

Kershenbaum은 데모테입을 마음에 들어했고 A&M이 계약할 수 있도록 설득했다. 데뷔앨범《Look Sharp》는 1979년초에 발매됐고 강한 뉴웨이브적 요소들 때문에 영국에서는 대단한 히트를 기록했다. 앨범에 수록됐던 “Is She Really Going out With Him?”은 미국에서 싱글로 내놓아 골드 레코드가 됏다. 두번째 앨범《I’m The Man》은 1980년 초까지 좋은 성적을 올렸으며 Top5에 오른 영국 싱글 “Its Different For Girls”를 제공했다.

그때까지 Joe는 레게에 전념하게 됐고 이미 다음 앨범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1980년 레게 아티스트인 Lincoln Thompson과 함께 세곡이 담긴 Ep《Tilt》를 제작, 발표했는데 그앨범에는 Jimmy Cliff의 “The Harder They Come”이 수록됐다. 레게풍의 록은 다음 앨범인《Beat Crazy》에서도 볼 수 있다. 1980년에 화제가 됏던 일은 London Crystal Palace 공연에서 Bob Marley가 초대손님으로 출연햇다는 것과 네덜랜드에서《I’m The Man》이 유명한 Edison Award를 수상한 일이다.

1981년 초에는 병으로 수개월간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집에서 요양하는 동안 Cab Calloway나 Louis Jordan같은 재즈 아티스트의 음반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회복했을때 그는 런던에서 연주하는 재즈그룹에 참여했다. 재즈는 1981년 앨범인 《Joe Jackson’s Jumpin’ Jive》 에 잘 나타난다. 이 앨범은 나쁘지는 않앗지만 예술적 감각을 충족시키진 못했고 자신이나 재즈를 위해서 어떠한 돌파구도 마련해 주지 못했다. 많은 비평가들의 전형적인 신드롬 탓인지 독자들은 Joe의 음악적 경력이 길을 잃었다고 아마도 내내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Rolling Stone지의 비평은 이러했다.

“그는 또다시 흔들리는 시기에 앨범을 발표해 일어나는 그의 예술적 문제점에 대한 모든 논쟁을 회피하고 있다. 이러한 성실성은 찾아보기 힘들고 영혼없는 여러가지 40년대 곡들을 새롭게 만들어 놓은것아 그를 이끌고 있을 뿐이다..”

Joe는 곧 이 부고장이 성급했음을 보여주었다. 음악생활의 다음단계를 위해 본거지를 영국에서 뉴욕으로 옮겼다. 그리고 걸작《Night And Day》를 위해 제 2의 고향인 뉴욕의 거리를 돌아다녔다. ‘Night’면에는 어두워진 후 맨하탄의 광적인 풍경을 묘사하고 있고 ‘Day’면에는 보다 부드럽고 철학적인 록송을 수록했다. 앨범은 그전에 발표했던 두장의 앨범을 혹평했던 많은 사람들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았다. 예를 들면 Rolling Stone은 이 앨범을 가리켜 “비길데 없는 성공작” 이라 칭했다.이 앨범은 여러장의 히트 싱글을 뽑아냈는데 “Stepping Out”은 1982년 미국과 영국에서 Top10 안에 들었고 “Breaking Us In Two”는 1983년의 베스트 셀러였다.

1982년 미국에서 순회공연을 갖는 동안 Debora Winger가 출연한 영화《Mike’s Murder》를 위해 곡을 쓰는 시간까지 갖게 됐다. 그 사운드트랙은 그의 첫번째 영화음악인 “Moonlight”가 담겼다. 그 일은 다음앨범에 맨하탄의 Lower East Side를 묘사한 “Loisaida”를 비롯해 몇곡의 연주곡을 첨가힐 스 있도록 그에게 용기를 복돋아 주었다. 이 앨범은 클래식한 세션을 자주 도입하는 Old Masonic Lodge에서 녹음됐다. 1984년 발표한《Body And Soul》에서는 성숙된 그의 통찰력과 음악적 완숙미가 반영된 곡이 수록됐다. 하지만 이는 아마도 그의 팬들이들어왔던 것보다는 약간 복잡했을테고 따라서 청취자들 보다는 비평가들에게 훨씬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역량을 개선해 가면서 음악생활의 새로운 기회를 위해 노력했다. 1985년 1월과 2월 일본영화《시인의 집》을 위해 20분짜리 오케스트라 작품을 작곡했으며 편곡했다. 5주동안 일본에 가서 연습을 도왔고 Tokyo Symphny Orchestra의 연주녹음을 감독했다. 그 영화는 후에 쓰꾸바에서 열렸던 Expo 85 과학박람회에서 상영됐다. 1985년 여름, 기타리스트인 Vinnie Zummo와 함께 Zummo의 아내 Jannice가 1986년 2월 발표한《Modern Marriage》를 공동 제작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위해 1985년에는 열심히 작곡했고 1986년 초에는 전혀 색다른 내용의 만족할만한 두 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첫번째는《Big World》(1986)로 새로운 록송이 수록되어 있고 두번째는《Will Power》(1987)로 모두 연주곡 모음집이다. 1988년에는 더블앨범인《Live 1980/86》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