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K LOWE AND HIS COWBOY OUTFIT- The Rose Of England(1985, Columbia)

NICK LOWE AND HIS COWBOY OUTFIT- The Rose Of England(1985, Columbia)

Nick Lowe의 컨트리록 프로젝트 Nick Lowe And His Cowboy Outfit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 Nick Lowe가 만들고 Dave Edmunds가 히트시켰던 “I Knew the Bride (When She Used to Rock ‘n’ Roll)”을 자신이 다시 연주했다.


닉 로우(Nick Lowe)는 레코드 제작에서 직접 노래 부르는 일까지 팝뮤직계의 여러 분야에서 대단한 능력을 발휘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1970년대 수퍼스타로 이름을 날렸다고 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생에 걸쳐 이뤄내는 만큼보다 더 열성적으로 닉 로우는 해나간 것이다. 공연장을 찾는 이들에게는 닉 로우라는 이름이 귀에 익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는 Elvis Costello, Chrissie Hynde & The Pretenders, Graham Parker 같은 여러 유명 음악인들의 앨범을 제작하여 가수들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인물이다. 가수겸 프로듀서로서 해내온 업적으로 그는 1978년 런던 데일리 미러지 독자선정 그해의 최우수 공로상 특별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해 Bomp 지의 바비 애브람스와 가졌던 인터뷰를 보면 그는 자신의 이러한 다양한 활동이 수반하는 장단점을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처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걸로 생각합니다. 내가 특별히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이 지니고 있지 못한 것중에 내가 지니고 있는 것이 잇다면 그건 바로 개성을 집어내는 안목과 개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알아보는 눈을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나 자신도 그러한 개성을 지니고 있는지 어떤지는 모릅니다만 어떤 사람이 개성을 지니고 있는지는 확실히 알아볼 수 잇습니다. 그게 바로 재능이겠지요. 나는 팔방미인 소리는 들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한가지도 최고로 잘 해내는건 없습니다. 나는 일을 할때 음악팬의 자세에서 생각을 합니다. 모든 일에 잇어 나는 굉장히 변덕스러워요. 매사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으며 꾸준하지도 못하죠. 모든 팝스타들이 이래야 된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나는 이런식으로 살아가는게 더 낫다고 생각해요.”

로우는 5,60년대 Elvis Presley, Beatles, Rolling Stones 같은 아티스트들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 또래의 많은 청소년들이 그러했듯 그는 10대 초반에 음악계에 종사할 꿈을 품고 기타 코드를 익혔고 학교 찬구들과 밴드를 조직해 활동했다. 학교 친구인 Brinsley Schwarz(guitar), Bob Andrews(bass) 와 함께 조직햇던 스쿨밴드가 1965년 Kippington Lodge라는 그룹으로 변모했다. 영국 클럽가를 돌며 활동을 시작한 Kippington Lodge는 Parlophone/EMI 레이블과 계약을 따내어 60년대 후반에는 싱글도 여러장 발매했다. 1969년 Kippington Lodge는 정식멤버로 Billy Rankin을 영입하여 Brinsley Schwarz 라는 이름으로 재정비됐다. 로우의 지대한 능력은 1970년 10월에 낸 데뷔앨범《Brinsley Schwarz》의 수록곡 작곡에서 여실히 발휘됐다. 닉은 전 수록곡의 작곡에 참여했다. 뛰어난 작품인 “Country Girl”이 수록된 작품《Despite It All》(1971)에서 도 닉은 한 곡을 제외한 나머지 전 수록곡을 썼다.

그룹의 명성은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인 Ian Gomm의 가입으로 절정에 달했다. Brinsley Schwarz는 1070년대 초,중반의 영국 Pub-Rock 운동 (70년대 영국에서 등장한 서민적인 언더그라운드 록)의 중추이자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 그룹으로 인정받게 되었다.1972년 Brinsley Schwarz는《Silver Pistol》과《Nervous On The Road》 2장의 앨범을 내놓았다. 로우가 대부분의 곡들을 쓰긴 했지만 곰과 앤드류스도 노래를 만들었다. 이밖에 브린슬리 슈왈츠가 발표한 앨범들로는 1973년 United Artists 레이블을 통해 영국에서 발매된《Please Don’t Ever Change》와 뒤에 록파일(ROCKPILE) 이라는 그룹에서 로우와 함께 활동하게 되는 데이브 에드먼즈(Dave Edmunds) 가 웨일즈 지방의 Rockfield 스튜디오에서 프로듀스하여 1974년 미국에서 발매된《The New Favorites Of Brinsley Shwarz》가 있다. 이 앨범에 있는 로우의 작품《(What’s So Funny ‘Bout) Peace, Love And Understanding》은 뒤에 엘비스 코스텔로가 리메이크 한 바 있다.

70년대 초, 중반 에드먼드와 브린슬리 슈왈츠는 많은 공연을 가졌다. 그룹은 1974년에는 데이빗 에드먼즈와 Electricians 라는 이름으로 David Bowie의 영화《Ziggy Stardust》사운드트랙에도 참여했다. 이해에 로우는 에드먼즈가 RCA에서 낸 앨범《Subtle As A Flying Mallet》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브린슬리 슈왈츠의 시대에도 종국이 다가왔다. 1975년 3월 마지막 싱글을 녹음하는 것을 끝으로 그룹이 해체되어 슈왈츠와 랜킨은 Sean Tyla, Martin Belmont와 함께 DUCKS DELUX 라는 퍼브록 밴드를 만들었으며 로우는 Jake Riviera와 함께 MODERN BOYS PRODUCTIONS 라는 팀을 결성했다. 이 팀이 발표한 풍자적인 싱글들로는 Tartan Horde 라는 이름으로 낸《Bay City Rollers We Love You》와 DISCO BROS 라는 이름으로 낸《Let’s Go To The Disco》/《Everybody Dance》가있다.
헌데 브린슬리 슈왈츠는 없어지긴 했지만 잊혀진 건 아니어서 초창기에 만들었던 앨범 두장이 1978년 Capital 레코드사에서 《Brinsley Schwarz> 라는 타이틀의 더블 LP 세트로 미국에서 재발매했다. 또 같은 해 United Artists 레이블에서도《Fifteen Thoughts of Brinsley Schwarz》를 미국에서 발매시켰다. 로우는 브린슬리 슈왈츠 시절의 매니저였던 Dave Robinson 과 동료 제이크 리비에라가 설립한 신흥 레리블 STIFF 레코드에서 새출발을 했다.
이 레이블에서 발표한 첫번째 싱글은《Heart of The City>/《So It Goes》로 닉이 작곡하여 리비에라와 공동으로 프로듀스했다. 닉의 활약 덕에 Stiff 레코드사는 다수의 유망주들을 끌어올 수 있었다. 1977년도에 만들어진 Stiff레코드사의 샘플러 앨범《Bunch of Stiffs》에는 닉 로우의《I Love My Lable》외에 닉이 프로듀스한 Wreckless Eric의《Whole Wide World》, Magic Michael, Stone’s Masonry의 노래들, Elvis Costello 의《Less Than Zero》등이 실렸다. 이 시기에 닉이 혼자서(혹은 데이브 에드먼즈와) 공동으로 작곡하여 레코딩하고 공연에서 선보인 노래들로는《Little Darlin’》,《What Did I Do Last Night>,《I Knew The Bride>등이 있다. 닉이 Stiff 레코드사에서 만든 첫 앨범인《Bowl》EP에는 그의 대표곡들이 된《Marie Provost>,《Shake That Rat>, 《Endless Sleep》,《Born A Woman>등의 곡이 담겨 있다. (위의 두 곡은 싱글로도 발매됨) 1977년 봄 에드먼즈와 로우는 Rockpile이라는 4인조 그룹을 조직하여 공연을 가졌다. 그 해에도 로우의 노래들은 Stiff 레코드사의 샘플러 앨범《Stiff Live Stiffs》와《Hits Greatest Stiffs》에 수록됐다.

자신의 곡을 녹음하고 공연을 갖는 것도 모자라 닉은 음반제작 작업에까지 손을 대어 빡빡하게 일상을 보냈다. 1976년에서 1978년까지 그가 제작한 음반들로는 Damned의 데뷔앨범《Damned Damne Damned》와 싱글들, Alberto Y Los Paranoias의 펑크풍자 EP, Graham Parker의 데뷔앨범 전곡과 두번째 앨범에서의 한 곡, 세번째 앨범《Live At Marble Arch》의 세션, Ep《Pink Parker》엘비스 코스텔로의 처음 앨범 세장, Chrissie Hyde & The Pretenders의 데뷔싱글《Stop Your Sobbing》, Mickey Jupp의《Juppanese》앨범 절반 등이다.
1978년 4월 19일부터 6월 7일까지 Rockpile은 Elvis Costello & The Attractions, Mink Deville과 함께 미국공연을 가졌다.(Rockpile의 멤버로는 로우와 에드먼즈 외에 Billy Bremmer, Terry Williams가 있었다.) 그 해 후반기에 Rockpile은 에드먼즈의《Tracks On Wax 4》앨범에 참여했는데 이 앨범 안에 로우의 곡이 두 곡(《Television》,《Heart O fThe City》), 에드먼즈와 로우의 공동작품이 세 곡(《Deborah》,《What Looks Best On You》,《Never Been In Love》)이 있었다. 1978년 로우는 솔로활동을 시작해 나갔다.
그의 데뷔앨범은 영국에서는《Jesus Of Cool》이라는 타이틀이 붙여졌으나 1978년 3월 Columbia 레이블을 통해 미국에서 발매될때는《Pure Pop For Now People>이라는 타이틀로 바뀌었다. 이 앨범은 미국 차트 하위권에 머물렀다. Columbia 레이블에서 나온 두번째 앨범 《Labour Of Lust》(1979) 역시 비슷한 성적을 거뒀다. 몇년간의 공백뒤 로우는 1982년에《Nick The Knife》, 1983년에《The Abominable Shoeman》을 솔로앨범으로 다시 내놓았다.

1980년대에도 로우는 음반제작, 작곡, 공연등으로 시간을 쪼개가며 활동을 계속했다. 또 Johnny Cash의 의붓딸이자 컨트리 그룹 Carter Family의 멤버로 힘있는 음성을 지닌 컨트리 록 팝 싱어 Carlene Carter와 결혼함으로써 연예인 가문에 합류했다. 80년대 중반에 잠시 멈칫한 적도 있긴 하지만 로우와 데이브 에드먼즈는 다양한 작업을 함께 계속 해나갔다. 한번은 에드먼즈가 어느 기자에게 이렇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내게는 닉 로우가 필요하지 않아요. 닉이 없이도 무대까지 걸어 나갈수는 있으니까요. 하지만 무대 위에서는 닉이 있어주는게 좋아요. 그 사람이 없다면 그렇게 신나지 않을 테니까요. 짜릿하지도 않을 테구요. 그 사람이 잇어야 주위 사람들이 흥겨워 하지요. 우선 닉이 먼저 흥겨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도 흥겨워 지니까요. 그렇게 되면 다들 흥겨워지기 시작하는 거지요.”

1984년 Columbia 레코드사에서는 닉의 다섯번째 앨범《Nick Lowe And His Cowboy Outfit》을 발매했다. 카우보이 아웃핏은 그의 밴드 이름이었는데 멤버는 키보드의 Paul Corrack, 기타의 마틴 벨몬트, 드럼의 Bobby Irwin으로 구성됐다. 앨범의 첫 싱글《Half A Boy Half A Man>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차트 10위권안에 들었다. 1985년 중반 Nick & Cowboy Outfit은 《The Rose Of England》라는 앨범을 내놓았다. 1985년 후반부에는 이 앨범에서 나온 싱글《I Knew The Bride (When She Used To Rock And Roll)》이 미국에서 히트했다.
1986년 로우는 엘비스 코스텔로의 앨범《Blood And Chocolate》을 프로듀스했고 1987년에는 그의 공연에서 리듬 기타를 연주해 주었다.1988년 3월 Columbia 레이블에서는 일곱번째 앨범인 《Pinker And Producer Than Previous》가 나왔다. 수록곡중에《Lovers Jamboree》라는 노래는 에드먼즈가 프로듀스를 맡음으로써 닉 로우와 데이브 에드먼즈의 재결합이 이뤄진 곡이다.

출처 <핫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