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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13 Punk77 THE SEX PISTOLS - No Future U.K?(1989, Receiver Records Limited)
  2. 2008/02/12 Punk77 MALCOLM McLAREN
  3. 2007/05/08 Punk77 SIOUXIE & THE BANSHEES
  4. 2007/05/04 Punk77 RICH KIDS
  5. 2007/05/04 Punk77 SID VICIOUS
  6. 2007/05/03 Punk77 Nevermind the Bollock.. 패러디물들..
  7. 2007/05/03 Punk77 PUBLIC IMAGE LIMITED(P.I.L.)
  8. 2007/05/03 Punk77 THE PROFESSIONALS
  9. 2007/04/30 Punk77 The Professionals - 123(1980)
  10. 2006/09/27 Punk77 Fever Pitch
1977년에 발매된 「Spunk」 부틀렉에 3곡을 추가해 1989년에 확장버전으로 발매된 공식 부틀렉으로 글렌, 폴, 스티브의 허락을 받았다고 슬리브에 표기되어 있다.

긴 엔딩이 포함되어 있는 "No Fun"의 유일한 버전이 수록되어 있는 부틀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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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x Pistols의 악명 높은 매니저로 알려졌던 인물로 1980년대에는 자신도 뮤지션이 되었고, 영국에서는 꽤 히트한 곡들을 만들었다.

그는 1963년 성 마틴 예술학교를 시작으로 1971년 골드스미스학교까지 무려 6군데의 예술학교를 다녔는데 이 시절에 그는 상황주의에 흥미를 가졌고 이를 대중 문화 프로모션에 활용하고자 했다. 의상 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골드스미스학교 시절부터 시작돼 졸업을 포기하고, 1972년에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SEX라는 숍을 열었다.
뉴욕 부티크 페어에서 그는 뉴욕 돌즈의 멤버들을 만나게 되고 1974년부터 그들의 매니저를 맡는다. 붉은 가죽과 소련 국기에 나오는 “망치와 징”을 무대에 올리고 홍보 사진들을 뿌렸다. 그러나 이는 공산주의를 증오하는 미국인 정서에 맞지 않아 뉴욕 돌즈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귀국 후, 그는 뉴욕 돌즈를 통해 배운 매니저 일을 런던에서 하고 싶었고 이는 섹스 피스톨즈와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1979년에는 다큐멘터리 <The Great Rock ’n’ Roll Swindle>에서 사운드 트랙 앨범에 “You Need Hands”를 부름으로써 자신도 데뷔를 한다. 바우 와우 와우와 보이 조지 등을 발굴하는 일을 하면서 그 자신도 뮤지션으로 꾸준히 활동을 한다. 포크 음악과 힙합을 합성한 “Buffalo Gals”를 1982년 낸 이후, 1998년까지 영국 차트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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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ouxsie Sioux와 Steven Severin은 초창기 섹스 피스톨즈 를 따라다니던 악명높은 그루피들인 Bromley Contingent의 일원이었다.
Siouxsie는 100club Punk Festival에 참여해 "The Lord's Prayer"를 길게 편곡해 부르는데 당시 드러머는 시드 비셔스였다.

Siouxsie는 섹스 피스톨즈가 출연해서 'fuck'을 포함한 온갖 방송 금지용어를 내뱉어 유명해진 연예정보 프로그램<Today>에 출연해 사회자인 Bill Grundy와 대화를 주고 받으며 유명세를 타게 된다. 그 사건이 있은 한달후 Siouxsie는 자신의 밴드인 Banshees의 멤버를 모으는데 Pete Fendon(guitar), Steve Severin(bass), Kenny Morris(drums)가 여기에 참여한다.
Siouxsie는 나찌의 비주얼과 고딕풍의 블랙 메이크업, 그리고 가슴을 드러내는 행동으로 주목을 받는다. 1977년 중반에는 Fendon이 John McGeogh로 교체되고 그룹은 Johnny Thunders and Heartbreakers의 지원을 받으며 BBC의 디스크 자키인 John Peel Session을 위해 레코딩을 하기도 한다.
1978년, 그룹은 Polydor과 계약하고, 첫번째 싱글인 "Hong Kong Garden"을 발표해 UK Top10을 기록한다. 곧이어 Steve Lillywhite가 프로듀스한《The Scream》이 발표돼 "The Staircase(Mystery)"와 "Playground Twist"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며 다음 앨범인《Join Hands》까지 성공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프로모션 투어 도중 Morris와 McKay가 그룹을 떠나고 전 Slits의 멤버인 Budgie와 Cure에서 온 Robert Smith가 임시멤버로 가입한다. Siouxsie의 나찌이미지의 영향은 "Mittageisen(Metal Postcard)"에서도 다시 한번 나타나며 Top 50을 기록하고 "Happy Hpuse"와 "Christine"도 멜로딕한 사운드로 큰 성공을 거둔다.

《Kaleidoscope>의 성공이후 그룹은 구 소련내에서의 공연을 포함한 대규모 월드 투어를 기획한다. 또다른 Top 10앨범인《Juju》이후 멤버들의 다른 활동들이 시작되는데 Siouxsie와 Budgie는 The Creatures를 결성해 앨범 발매와 함께 Top10을 기록하는 성공을 거두며, Smith와 Severin은 Glove라는 그룹으로 성공을 거둔다.《A Kiss In The Dreamhouse》의 앨범 녹음을 위해 다시 모인 그룹은 1983년 가을, 이탈리아 공산당을 위한 공연을 가지기도 한다. 이후 비틀즈의 곡을 편곡한 "Dear Prudence"는 UK 차트 3위까지 기록하는 대성공을 거둔다.
1984년에는 "Swimming Horse"가 다시 한번 히트를 하고, 약간의 멤버 교체가 있었는데 Clock DVA에서 활동하던 John Carruthers가 잠시 가입하나 곧 John Klein으로 교체된다.

80년대 중반에 발표된 앨범들은 고정적인 팬들의 확보로 상업적인 성공에 대한 부담감에서 벗어나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스튜디오 작업에 임했음을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Through The Looking Glass》는 앨범 전체를 커버곡으로 채운 흥미로운 앨범이기도 하였는데 Bob Dylan의 커버곡인 "This Wheel's On Fire"는 UK Top20을 기록한다. 음악적인 변신을 한《Peepshow》역시 타협을 모르는 직선적인 태도를 보여주었고, 1991년에는 댄스곡 "Kiss Them For Me"와 《Superstition》으로 다시 한번 차트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여전히 실험적인 음악을 연주하며 이따금씩 차트에 등장하기도 한다.
(Siouxsie &The Banshees는 98년 2월, "모든 사람들이 안전핀을 꽂고 머리를 염색한 가수들과 계약하려 한다. 그들은 상업적으로 이용해 먹기 위해 펑크록의 영광을 부활시키려 하고 있다."라며 그룹의 해산을 선언했다. 인터뷰가 있던 날은 시드 비셔스가 사망한 날이었다.)  

조이라이더 (2004-01-13 21:22:49)
최고최고

도일만 (2004-08-06 05:50:52)
펑크록이라고 보긴엔 좀 뭐하죠..

조이라이더 (2004-12-05 23:14:52)
오~베이비오~ 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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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 KIDS

Band Information/N·O·P·Q·R·S | 2007/05/04 17:22 | Punk77
Sex Pistols에서 쫒겨난 글렌 매틀록을 중심으로 당시 무명의 뮤지션이었던 기타리스트 Steve New와 Rusty Egan이 모여 1977년 9월 결성했다.

밴드는 곧 틴에이저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던 팝밴드 Slik 출신의 Midge Ure를 보컬리스트로 맞아들여 EMI와 정식계약을 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글렌 매틀록의 뛰어난 멜로디 감각과 펑크의 에너지를 결합한 수준급의 파워팝/펑크 음악을 선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펑크와는 멀리 하려는 태도, 주목받지 못했던 외모, 비평가들의 곱지 않은 시선들이 어우러져 2장의 EP와 데뷔앨범은 큰 반응을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매틀록과 미지유어가 음악적으로 대립하면서 밴드는 2달남짓 활동하다 같은해 11월 사실상 활동을 중지했다.(레코드사와의 계약문제로 그룹의 이름은 계속 유지됐다.)

Rusty Egan과 Midge Ure는 이후 Visage 라는 밴드에서 같이 활동했고 80년대에 들어서면서 Midge Ure는 Ultravox에 합류해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Matlock은 이기팝의 공연에 참가하는등 개인활동을 시작했고 Steve New 역시 다른 펑크/뉴웨이브 밴드들에 참여하면서 각자 음악활동을 이어나갔다.  

성민석 (2005-03-23 10:35:47)  
노래는 괜찮았죠
컴필레이션에 Rich Kids라는 셀프타이틀 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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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4 17:22 2007/05/0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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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 VICIOUS

Band Information/N·O·P·Q·R·S | 2007/05/04 15:19 | Punk77
Sid Vicious 는 1957년 5월 10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John Beverley, Simon Ritchie 등 그의 이름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보통 두가지 이름을 혼합한 "John Simon"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그의 어머니인 Anne Beverley는 남편없이 혼자 살았으며 때때로 법이 허용하는 범위내의 마약중독자이기도 햇다.(시드의 주된 사망원인이 어머니가 구해다준 마약 때문이었다는 것은 이미 어느정도 정설로 굳어져 있다.)

어린 사이먼은 런던거리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했고, David Bowie, Roxy Music, T. Rex등의 글램로커들은 어릴적 그의 우상이었다. 때때로 사이먼은 그들의 옷차림을 흉내내기도 하였다.
1975년에는 학교에서 가장 친한 친구였던 John Lydon을 만나게 된다. 라이든은 자신의 햄스터와 비슷하게 생긴 사이먼에게 Sid Vicious라는 이름을 붙여주는데 시드 자신은 그 이름을 무척 싫어했다고 한다. 존 라이든과 시드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빈 건물등을 거처삼아 지냈고, 지하철 등에서 구걸을 하기도 했다. 이후 라이든이 Johnny Rotten이라는 이름으로 Sex Pistols에 가입하자 시드는 밴드의 열성적인 팬이 되었고 포고(pogo)라는 춤을 처음 선보인다.(포고댄스의 유래는 공연장에서 밴드의 모습을 좀 더 잘 보기 위해 뒤에서 펄쩍펄쩍 뛰던 행동이었다. 시드 비셔스를 가리켜 펑크계의 처비체커(트위스트춤을 처음 추기 시작한 가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시드는 피스톨즈의 열성적인 팬들로 구성된 Bromley Continent 의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밴드 Siouxsie & the Banshees의 드러머로 첫 공연을 하는데, 이 시절부터 시드는 공연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리는 특별한 재능을 보이기 시작한다. Damned의 100클럽 에서의 공연중에는 공연장위로 깨진 맥주병이 날아다녀 한 소녀가 이 병에 맞아 한쪽 눈을 실명하는 사건이 벌어져 경찰에 체포되기도 한다.(소녀의 눈이 다쳤는지에 대해서는 실제로 정확히 판명된 바 없다. 단지 소문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1976년 6월에는 유명한 음악 저널리스트인 Nick Kent가 공연장에서 시드비셔스에게 자전거 체인으로 두드려 맞는 사건이 발생한다.

1977년에 Sex Pistols는 Glen Matlock을 해고하고 자니로튼의 강한 추천에 의해서 시드를 새로운 베이스연주자로 맞아들인다. 시드는 전혀 베이스를 연주할줄 몰랐었으며 이미 이때부터 대중매체에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히기 시작했다. 1977년 초, 시드는 피스톨즈에 합류했고, 같은해 Johnny Thunders and the HeartbreakersClash, Damned와 U.K 투어를 위해 영국에 도착한다. 여기에는 그들의 열렬한 추종자이자 그루피, 또 헤로인 중독자이고 이미 Heartbreakers의 드러머인 Jerry Nolan과 한차례 염문을 뿌렸던 Nancy Spungen이 동행했다.
이때부터 시드는 급속히 자기파멸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시드는 낸시의 친구로 알려진 린다 Linda Ashby의 집에서 처음 낸시를 만났다. 세간에 알려진대로 낸시가 처음으로 시드에게 약을 가르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미 1년반 전부터 마리화나와 스피드에 익숙해 있었다. 시드가 처음으로 헤로인을 시작하게된 계기는 영국순회공연을 시작한 Johnny Thunders에 의해서인데 Johnny Thunders는 런던 펑크신에 처음으로 헤로인을 소개시킨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시드는 Melody Maker와의 인터뷰에서 자신과 낸시는 소울메이트이며 그녀 이외는 어느 누구도 사랑해 본적이 없으며 그녀 없이는 살지 못할 것이라고 얘기하곤 했다. 자니로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드는 낸시 스펑겐과 함께 급속도로 헤로인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Sid Vicious의 첫 번째 피스톨즈와의 공연은 1977년 4월 4일에 있었다. 베이스 연주를 위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데뷔앨범의 녹음도중 그는 녹음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술과 약에 만취해 나타났고 밴드는 글렌을 다시 고용해 앨범의 거의 모든 트랙의 녹음을 완성하였다.

온나라가 Sex Pistols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한 그 해, 시드의 친구들은 그의 여자친구 낸시를 그에게서 떼어놓고 헤로인 중독에서 벗어나게 하려 했지만 모두 헛수고로 끝나고 말았다. 1978년 1월 Sex Pistols는 악명높은 미국투어를 시작한다. 낸시와 떨어져 있는 동안 자니는 그에게 헤로인을 끊을 것을 종용했으나 이미 통제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피스톨즈의 마지막 공연 끝난 후 삼 일 뒤 시드는 헤로인 과다복용에 의한 고통을 겪기 시작했고 뉴욕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급기야는 혼수상태에 빠진다.
영국으로 돌아온 후 시드는 자니의 도움으로 헤로인 중독을 거의 치료하고《Great Rock 'n' Roll Swindle》의 촬영을 위해 파리로 떠난다. 여기서 시드는 "My Way" 와 Eddie Cochran의 "C'mon Everybody"를 녹음한다. 1978년 시드와 낸시는 뉴욕으로 떠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Vicious White Kids라는 밴드와 함께 영국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한다. 여기에는기타리스트 Steve New(전 Generation X의 기타리스트), 베이시스트 Glen Matlock, 드러머 Rat Scabies(Damned의 드러머) 가 같이 한다.
뉴욕에 도착한 시드는 뉴욕의 연주자들인 기타리스트 Barry Jones, 기타리스트 Steve Dior 그리고 New York Dolls의 베이스 연주자였던 Arthur Kane, 드러머 Jerry Nolan과 함께 Idols라는 밴드를 결성해 라이브 앨범《Sid Sings》를 1979년에 발표한다.(버진에서 정식으로 발매된 최악의 음질을 자랑하는 라이브 앨범이다. 시드의 오리지널곡은 단 한 곡도 없다.) 대부분의 곡들은 Sex Pistols, New York Dolls, Heartbreakers의 커버버전과《The Great Rock 'n' Roll Swindle》에서의 곡들이 주를 이루었다.
1978년 10월 12일 시드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낸시가 첼시호텔 목욕탕에 칼에 찔린채 죽어있는걸 발견한다. 약물 중독상태이었던 그는 전날 밤 벌어졌던 일들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고 경찰에 체포된다. 경찰이 시드에게 왜 그녀를 죽였느냐고 질문하자 시드는 "나는 개이기 때문이다. 미친개이기 때문이다.(because I am a dog. A dirty dog.)"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버진 레코드사에서 보석금을 내고 그를 풀어주었으나 이후 시드는 여러차례 자살을 기도한다. 12월 9일 Max's Kansas City 클럽에서 시드는 Patti Smith의 친오빠인 Todd Smith의 여자친구에게 추근대다 이를 제지하려던 Todd Smith의 얼굴을 깨진 병으로 그어 다시 한번 경찰에 체포된다.

1979년 2월 1일 풀려난 시드는 그의 어머니로부터 질나쁜 헤로인을 다량으로 건네받고 약을 복용한 다음날 아침 죽은채로 발견된다. 그의 나이 21살이었다. 낸시 스펑겐의 살해사건은 여전히 미해결로 남아 있다. 몇가지의 추측들이 난무하지만 시드의 자백은 헤로인을 얻지 못하자 그것이 둘사이의 싸움으로 이어져 결국에는 그녀를 칼로 찌르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낸시는 부상을 입고 거의 옷을 걸치지 못한 상태였으며 몇시간 후에 사망했다.
하지만 시드는 심한 헤로인 중독으로 그날 밤 사건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고 전해지며, 일부 증언자들이 몇가지의 중요한 증거들을 매니저인 말콤이 숨기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낸시가 죽던 날 밤 그룹의 또다른 멤버가 아파트에 있었고 헤로인 거래가 있었다는 점, 현금이 도난당해 있고 문이 밖에서 열려 있었다는 점 등 제3자에 의해 살해됐을 가능성도 충분히 제기됐다.

글출처: All Music Guide, Sid's Way

이기선 (2003-09-23 16:33:59)
그는 Punk의 아이콘 이었지만 또한 가장 Punk를 변질시킨 장본인 이기도 하다. 과대포장된 그의 삶은 Punk의 파멸 그이상 그이하도 아니었다...

이규환 (2004-01-15 11:40:42)
펑크록의 종말을 앞당긴 혹은 이중성을 보여준 인물이기도 하지만 역시 펑크록의 전성기를 이끈 인물. 음악적으로는 형편없었다고 하나 시드비셔스 시절의 섹스피스톨즈에 영향을 받은 수많은 펑크밴드들은 보면 단지 음악을 만들고 못만들고에 대한 영향이 다가 아닌듯.
과대평가도 싫지만 어느날 갑자기 쓰레기 취급하는 과소평가도 NO!


씨드 (2004-01-27 10:19:40)
why dont you shut your fuckin' mouth

강경화 (2005-06-07 01:18:07)
시드싱 앨범에선 2번이 좋고...거대한 록클롤 사기 앨범에선...커몬 에브리바디,섬띵 엘즈,마이 웨이가 시드가 부른 노래 들..

김정운 (2006-05-31 17:11:03)
ㅠㅠ보고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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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blindedarm.com/0505nevermind.htm

이게 다가 아니겠지만.. 이것만 해도.. 많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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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3 17:50 2007/05/0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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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x Pistols 탈퇴 이후 (물론 피스톨즈측은 쫒겨났다고 주장하지만) 자니 로튼이 그의 본명인 존 라이든이란 이름으로 몇개의 솔로 싱글을 발표한 이후 전 클래시의 기타리스트였던 Keith Levene과 함께 결성한 밴드이다.

초기에는 펑크의 영향을 받은 록음악이 주류였지만 "로큰롤은 연주하지 않는다"는 존 라이든의 말대로 기존 로큰롤 음악을 해체시키는 작품으로 바뀌어갔다. 민속음악적인 요소, dub, dab, reggae, psychedelic등 다양한 요소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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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3 16:31 2007/05/0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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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x Pistols의 두 멤버 Steve Jones와 Paul Cook의 프로젝트 형식으로 출발한 Professionals는 Ray McVeigh(guitar/voclas)와 Vic Goddard와 Subway Sect를 거친 베이스 연주자 Paul Meyers를 밴드멤버로 끌어모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으며 데뷔LP를 발매하지만 그 결과는 아주 실망스럽게 나타난다.

이후 밴드는 여러곡의 싱글 히트곡을 실은 두번째 앨범을 발표하지만 역시 비평이나 대중들의 주목을 받는데는 실패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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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3 16:28 2007/05/03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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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필요없다!!!
자고로 록은 이래야만 하는 것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3j8wsA3HI3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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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30 15:39 2007/04/30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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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ver Pitch

책속으로 | 2006/09/27 13:52 | Punk77
하지만 그날 밤 텔레비전에서 하일라이트를 보면서, 나는 마음 한구석으로는 그 파울을 즐겼음을 깨달았다. 그것이 앨런의 골을 막았기 때문이 아니라,(경기는 끝난 셈이었고, 우리는 어쨋든 졌으므로 그게 들어갔든 말든 상관없었다.) 너무나 우스울 정도로 아스날다운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아스날의 수비수 외에 그 누가 열일곱 살짜리 꼬마 선수를 밀치겠는가? 머슨인지, 데이비스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해설자는 당연히 기겁을 하면서 법석을 떨었다. 착한 편이 악당을 쫒아내는 타령에 지겨워진 나는, 그의 정의감 넘치는 해설에 부아가 치밀었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1976년에 빌 그런디가 펑크록 밴드인 섹스 피스톨스를 텔레비전 쇼에 초대해 놓고서는 나중에 그들의 버릇없는 태도에 노발대발했던 일이 떠올랐다. 아스날은 최초의 진정한 펑크 로커이다. 우리의 센터하프들은 섹스 피스톨스의 조니 로튼(섹스 피스톨스의 보컬)이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일탈성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있었던 것이다.

닉 혼비 <피버피치 - 나는 왜 축구와 사랑에 빠졌는가> 중에서

로튼 역시 아스날의 열혈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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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7 13:52 2006/09/27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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