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nk'에 해당되는 글 31

  1. 2008/09/04 Punk77 Eddie And The Hot Rods - (I Don't Know)What's Really Going On(1977)
  2. 2008/09/04 Punk77 Jimmy Pursey - Naughty Boys Like Naughty Girls(1981)
  3. 2008/02/01 Punk77 Generation X - Running With The Boss Sound(1979)
  4. 2007/07/23 Punk77 Buzzcocks - What Do I Get(1979)
  5. 2007/06/25 Punk77 The Real Kids - Rave On(1977)
  6. 2007/06/24 Punk77 One Way System - Me And You(1983)
  7. 2007/05/12 Punk77 THE SEX PISTOLS
  8. 2007/05/12 Punk77 CARPETTES
  9. 2007/05/04 Punk77 RADIO STARS
  10. 2007/05/04 Punk77 SID VIC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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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많은 펍록 밴드들이 Sex Pistols의 공연을 보고(조스트러머에서 이언 스튜어트까지 그 부류도 다양하다.) 펑크밴드를 새로 결성하거나 밴드를 아예 펑크 스타일로 변화시켰다.

Eddie And The Hot Rods는 이러한 흐름에 불을 지핀 밴드로 음악의 형식미는 70년대 브리티시 펑크밴드들의 전형적인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첫번째 앨범 <Teenage Depression>에 뒤지지 않는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는 두 번째 앨범 <Life On The Line> 수록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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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4 18:29 2008/09/04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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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21이라는 밴드로 활동 재개를 선언한 Sham Army의 대장 Jimmy Pursey의 1981년 싱글.

1982년 두 번째 앨범 <Alien Orphan>에 수록됐으며, 1987년 Sham69가 재결성 되기 전까지 결코 주목받지 못했던 몇 장의 뉴웨이브 음반들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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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4 09:22 2008/09/04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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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Valley Of The Do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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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한 옷가게에서나 흘러나올 듯한 컬리지록이라는 예전 어느 분의 의견에 공감이 간다. 미국시장을 겨냥해 초기의 싱글곡들을 모아 발표했지만 이 앨범을 영국내에서도 발매하려는 레코드사와의 분쟁으로 이어지면서 열받은 피트셸리는 밴드를 해산하고 만다. 최초의 차트히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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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23 11:14 2007/07/2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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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톤의 펑크/로큰롤신을 얘기할때 빠질 수 없는 인물 Joh Felice를 중심으로 결성되었던 "Ramones"에 대한 보스톤의 대답 The Real Kids.
Felice는 일찌감치 알콜과 약물, DIY 정신으로 충만한 펑크적인 인물이었으며, 보스톤 펑크신의 파이오니어들인 Jonathan Richman이나 Nervous Eaters같은 밴드들과도 활발하게 교류했다. 프랑스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1977년 Red Star Records에서 LP로 발매되었으며 후에 Norton이라는 레이블에서 CD로 재발매했다. 버디홀리의 원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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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5 10:31 2007/06/25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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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Anargram Records(Cherry Red의 또다른 브랜드이다.)에서 발매된 첫번째 LP <All System Go> 수록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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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4 16:31 2007/06/2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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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여름, Malcolm McLauren의 진두지휘아래 출발했다.
그룹은 잠시동안 밴드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Wally Nightingale을 리드 보컬리스트로 맞아 Swankers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 Sex Pistols로 개명하면서 Johnny Rotten(vocals), Steve Jones(guitar), Paul Cook(drums), Glen Matlock(bass)의 안정된 라인업을 유지했다.
 
1976년, 런던을 중심으로 부정기적인 연주활동을 갖는데 Malcolm McLaren이 상업적으로 잘 포장한 헤어스타일, 찢어진 티셔츠, 안전핀 등의 펑크패션은 금새 10대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는다. 밴드의 공연은 항상 폭동이 끊이질 않았는데 100 Club Punk Rock Festival에서 Damned의 공연중 시드 비셔스가 날린 맥주병이 깨지며 한 소녀가 눈이 머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정점에 달한다.(실제로 그런 사고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그 사실이 불분명하다. 또 하나의 시드 신화라는 얘기도 있다.)

밴드는 곧 EMI와 계약하고 "Anarchy In The UK"를 발표하며 공식적으로 데뷔한다. 한편 Sex Pistols는 런던의 주말 TV연예 프로그램인《Today》에 출연해 네개의 철자로 된 말들을 마구 내뱉는데 이 사건은 다음날 런던의 신문 헤드라인으로 일제히 기사화 된다.(섹스 피스톨즈 TV에서 'FUCK'이라고 하다!)
이로 인해 그룹의 'Anarchy' 투어는 가느 곳마다 취소되기 일쑤였고, 레코드 판매상들은 그들의 앨범 판매를 거부했다. "Anarchy In The UK"는 차트 38위를 기록했으나 오래지 않아 EMI와의 계약을 해지당한다. 1977년, Matlock이 Sid Vicious로 교체되면서 다음달 버킹검 궁전 앞에서 A&M과 계약을 맺게 되는데 1주일 후 A&M은 계약을 취소하고 Malcolm은 단 1주일만에 계약금 40,000파운드를 챙긴다.
이후 당시에는 소규모 레이블이었던 Virgin과 계약을 맺고 "God Save The Queen"을 여왕의 즉위 25년 기념일인 Queen's Jubilee에 발표한다. 라디오 주간 방송들은 일제히 이 곡을 방송금지 시켰지만 NME차트 1위를 기록하고 Johnny Rotten과 그룹 멤버들은 길거리에서 극우주의자들에 의해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세번째 싱글 'Pretty Vacant'(Glen Matlock의 작품인)는 금새 Top10에 진입한다. 그리고 그해 겨울 "Holiday In The Sun"이 히트를 기록하면서 모두가 기다리던 데뷔앨범《Never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가 발매된다.

이후 실패 투성이의 미국 투어와 함께 다큐멘터리 필름의 제작에 들어가는데 멤버들의 관계에도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다. 1978년 Rotten은 샌프란시스코에서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그룹을 떠나겠다고 발표한다. 당시 매니저인 Malcolm은 그는 해고 당한 것이라고 이야기 하기도 했다. 한편 Malcolm은 브라질로 이동해 전직 열차 강도였던 Ronnie Biggs와 필름 제작을 계속한다. Sid는 헤로인 중독 문제로 이 작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Jones와 Cook만이 작업에 참여했다. Malcolm은 Ronnie Biggs를 밴드의 보컬리스트로 싱글 "God Save The Pistols"를 녹음하는데 후에 'No One Is Innocent(A Punk Prayer)'로 제목이 바뀐다. b-side에는 Frank Sinatra의 고전을 커버한 Sid Vicious의 "My Way"를 수록한다.

Malcolm의 필름은 감독 Jullien Temple에 의해《The Great Rock'n' Roll Swindle》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다. 필름이 완성되면서 Sid는 그룹의 중심인물이 되어 있었고 그가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기 전 Eddie Cochran의 커버인 "C'mon Everybody"를 녹음한다. 1978년 10월 12일에는 Sid의 여자친구 Nancy Spungen이 첼시 호텔에서 칼에 찔린채 죽어 있었고, Sid는 살인 혐의로 체포된다. Sid는 보석으로 풀려나 있던 동안 헤로인과다 복용으로 고생하다 1979년 2월 2일 아침 시체로 발견된다.

Virgin Records는 이후《Flooging Dead Horse》(헛수고하기)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타이틀로 앨범을 발매하고 1986년 Johnny Rotten은 전 멤버들과 매니저였던 Malcolm과의 법정 소송에서 승리해 잃어버린 이름과 명예를 되찾으며 Sex Pistols와 완전히 결별했다.

차대선 (2004-07-21 02:07:50)
섹스피스톨즈..너무좋다.

조이라이더 (2004-12-05 23:13:49)
aituk

이지혜 (2005-01-01 00:09:38)
시드가 베이스를 잘치는 줄 알았다.//////

박인화 (2005-05-07 08:49:43)
섹스 피스톨즈의 진가는 그들의 연주 실력이 아니라 엿 같은 시대 상황에 온몸으로 저항한 그 정신이다. 그들의 저항 정신은 수많은 후배 락밴드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던가...그리고 아직도 그 정신은 유효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김정운 (2006-05-31 17:11:36)
시드잘치진않지만 센스잇다 ㅋ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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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2 19:40 2007/05/12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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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PETTES

Band Information/#·A·B·C·D·E·F | 2007/05/12 04:27 | Punk77
Carpettes는 1977년 4월, 잉글랜드 북동부 지방에서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인 Neil Thompson, 베이스 연주자 George Maddison, 드러머 Kevin Heard 등으로 결성되었는데 모두 같은 학교 동창들로 스쿨밴드인 Brown Sugar에서 연주활동을 하고 있었다.

두번의 지역공연을 마친 후 Sounds에 게재된 대표적인 인디레이블이었던 Small Wonder의 광고를 보고 5곡이 담긴 데모테잎를 보내기도 한다. 같은해 12월, 밴드는 4곡이 담긴《How About You And Me》의 EP를 발매하게 되는데 이 EP는 언론과 언더그라운드 펑크팬진 모두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내게 된다.
특히 타이틀곡인 "Radio Wunderbar"를 BBC의 Radio 1의 프로그램인 John Peel show에 출연해 정기적으로 연주하기도 한다. 이후 밴드는 2장의 앨범과 6곡의 싱글 발표했으며 많은 미발표곡들이 후에 재발매 되기도 했고, 영국과 이탈리아의 TV에 출연, 영국과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 등지의 순회공연으로 여전히 팬들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최근까지도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최근에는 Holidays in the sun 페스티발에의 출연과 UK Subs와의 잠시동안의 투어에 출연했다고 알려져 있다.

글출처: Carpettes 공식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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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2 04:27 2007/05/12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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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IO STARS

Band Information/N·O·P·Q·R·S | 2007/05/04 20:58 | Punk77
1977년 Andy Ellison(vocals), Ian McLeod(guitar), Martin Gordon(bass) 등 전 Jet의 멤버들 세명과 이전 Ellison과 Gordon의 밴드였던 John's Children, Sparks 시절부터 친분이 있던 드러머 Steve Perry가 합류해 출발했다.

초기의 싱글 "Dirty Pictures", "Nervous Wreck" 같은 곡이 히트를 기록하며 특유의 경쾌한 팝/펑크를 들려주었는데 대중적인 관심을 얻지는 못했다. 후에 전 Sparks의 멤버인 Trevor White 가 들어오나 곧바로 1978년 12월 Gordon이 그룹을 떠나며 밴드는 해산해 버린다.

Ellison과 White는 계속해서 프로젝트 형식으로 음악활동을 이어가는데 이들 역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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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4 20:58 2007/05/04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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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 VICIOUS

Band Information/N·O·P·Q·R·S | 2007/05/04 15:19 | Punk77
Sid Vicious 는 1957년 5월 10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John Beverley, Simon Ritchie 등 그의 이름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보통 두가지 이름을 혼합한 "John Simon"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그의 어머니인 Anne Beverley는 남편없이 혼자 살았으며 때때로 법이 허용하는 범위내의 마약중독자이기도 햇다.(시드의 주된 사망원인이 어머니가 구해다준 마약 때문이었다는 것은 이미 어느정도 정설로 굳어져 있다.)

어린 사이먼은 런던거리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했고, David Bowie, Roxy Music, T. Rex등의 글램로커들은 어릴적 그의 우상이었다. 때때로 사이먼은 그들의 옷차림을 흉내내기도 하였다.
1975년에는 학교에서 가장 친한 친구였던 John Lydon을 만나게 된다. 라이든은 자신의 햄스터와 비슷하게 생긴 사이먼에게 Sid Vicious라는 이름을 붙여주는데 시드 자신은 그 이름을 무척 싫어했다고 한다. 존 라이든과 시드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빈 건물등을 거처삼아 지냈고, 지하철 등에서 구걸을 하기도 했다. 이후 라이든이 Johnny Rotten이라는 이름으로 Sex Pistols에 가입하자 시드는 밴드의 열성적인 팬이 되었고 포고(pogo)라는 춤을 처음 선보인다.(포고댄스의 유래는 공연장에서 밴드의 모습을 좀 더 잘 보기 위해 뒤에서 펄쩍펄쩍 뛰던 행동이었다. 시드 비셔스를 가리켜 펑크계의 처비체커(트위스트춤을 처음 추기 시작한 가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시드는 피스톨즈의 열성적인 팬들로 구성된 Bromley Continent 의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밴드 Siouxsie & the Banshees의 드러머로 첫 공연을 하는데, 이 시절부터 시드는 공연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리는 특별한 재능을 보이기 시작한다. Damned의 100클럽 에서의 공연중에는 공연장위로 깨진 맥주병이 날아다녀 한 소녀가 이 병에 맞아 한쪽 눈을 실명하는 사건이 벌어져 경찰에 체포되기도 한다.(소녀의 눈이 다쳤는지에 대해서는 실제로 정확히 판명된 바 없다. 단지 소문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1976년 6월에는 유명한 음악 저널리스트인 Nick Kent가 공연장에서 시드비셔스에게 자전거 체인으로 두드려 맞는 사건이 발생한다.

1977년에 Sex Pistols는 Glen Matlock을 해고하고 자니로튼의 강한 추천에 의해서 시드를 새로운 베이스연주자로 맞아들인다. 시드는 전혀 베이스를 연주할줄 몰랐었으며 이미 이때부터 대중매체에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히기 시작했다. 1977년 초, 시드는 피스톨즈에 합류했고, 같은해 Johnny Thunders and the HeartbreakersClash, Damned와 U.K 투어를 위해 영국에 도착한다. 여기에는 그들의 열렬한 추종자이자 그루피, 또 헤로인 중독자이고 이미 Heartbreakers의 드러머인 Jerry Nolan과 한차례 염문을 뿌렸던 Nancy Spungen이 동행했다.
이때부터 시드는 급속히 자기파멸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시드는 낸시의 친구로 알려진 린다 Linda Ashby의 집에서 처음 낸시를 만났다. 세간에 알려진대로 낸시가 처음으로 시드에게 약을 가르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미 1년반 전부터 마리화나와 스피드에 익숙해 있었다. 시드가 처음으로 헤로인을 시작하게된 계기는 영국순회공연을 시작한 Johnny Thunders에 의해서인데 Johnny Thunders는 런던 펑크신에 처음으로 헤로인을 소개시킨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시드는 Melody Maker와의 인터뷰에서 자신과 낸시는 소울메이트이며 그녀 이외는 어느 누구도 사랑해 본적이 없으며 그녀 없이는 살지 못할 것이라고 얘기하곤 했다. 자니로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드는 낸시 스펑겐과 함께 급속도로 헤로인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Sid Vicious의 첫 번째 피스톨즈와의 공연은 1977년 4월 4일에 있었다. 베이스 연주를 위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데뷔앨범의 녹음도중 그는 녹음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술과 약에 만취해 나타났고 밴드는 글렌을 다시 고용해 앨범의 거의 모든 트랙의 녹음을 완성하였다.

온나라가 Sex Pistols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한 그 해, 시드의 친구들은 그의 여자친구 낸시를 그에게서 떼어놓고 헤로인 중독에서 벗어나게 하려 했지만 모두 헛수고로 끝나고 말았다. 1978년 1월 Sex Pistols는 악명높은 미국투어를 시작한다. 낸시와 떨어져 있는 동안 자니는 그에게 헤로인을 끊을 것을 종용했으나 이미 통제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피스톨즈의 마지막 공연 끝난 후 삼 일 뒤 시드는 헤로인 과다복용에 의한 고통을 겪기 시작했고 뉴욕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급기야는 혼수상태에 빠진다.
영국으로 돌아온 후 시드는 자니의 도움으로 헤로인 중독을 거의 치료하고《Great Rock 'n' Roll Swindle》의 촬영을 위해 파리로 떠난다. 여기서 시드는 "My Way" 와 Eddie Cochran의 "C'mon Everybody"를 녹음한다. 1978년 시드와 낸시는 뉴욕으로 떠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Vicious White Kids라는 밴드와 함께 영국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한다. 여기에는기타리스트 Steve New(전 Generation X의 기타리스트), 베이시스트 Glen Matlock, 드러머 Rat Scabies(Damned의 드러머) 가 같이 한다.
뉴욕에 도착한 시드는 뉴욕의 연주자들인 기타리스트 Barry Jones, 기타리스트 Steve Dior 그리고 New York Dolls의 베이스 연주자였던 Arthur Kane, 드러머 Jerry Nolan과 함께 Idols라는 밴드를 결성해 라이브 앨범《Sid Sings》를 1979년에 발표한다.(버진에서 정식으로 발매된 최악의 음질을 자랑하는 라이브 앨범이다. 시드의 오리지널곡은 단 한 곡도 없다.) 대부분의 곡들은 Sex Pistols, New York Dolls, Heartbreakers의 커버버전과《The Great Rock 'n' Roll Swindle》에서의 곡들이 주를 이루었다.
1978년 10월 12일 시드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낸시가 첼시호텔 목욕탕에 칼에 찔린채 죽어있는걸 발견한다. 약물 중독상태이었던 그는 전날 밤 벌어졌던 일들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고 경찰에 체포된다. 경찰이 시드에게 왜 그녀를 죽였느냐고 질문하자 시드는 "나는 개이기 때문이다. 미친개이기 때문이다.(because I am a dog. A dirty dog.)"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버진 레코드사에서 보석금을 내고 그를 풀어주었으나 이후 시드는 여러차례 자살을 기도한다. 12월 9일 Max's Kansas City 클럽에서 시드는 Patti Smith의 친오빠인 Todd Smith의 여자친구에게 추근대다 이를 제지하려던 Todd Smith의 얼굴을 깨진 병으로 그어 다시 한번 경찰에 체포된다.

1979년 2월 1일 풀려난 시드는 그의 어머니로부터 질나쁜 헤로인을 다량으로 건네받고 약을 복용한 다음날 아침 죽은채로 발견된다. 그의 나이 21살이었다. 낸시 스펑겐의 살해사건은 여전히 미해결로 남아 있다. 몇가지의 추측들이 난무하지만 시드의 자백은 헤로인을 얻지 못하자 그것이 둘사이의 싸움으로 이어져 결국에는 그녀를 칼로 찌르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낸시는 부상을 입고 거의 옷을 걸치지 못한 상태였으며 몇시간 후에 사망했다.
하지만 시드는 심한 헤로인 중독으로 그날 밤 사건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고 전해지며, 일부 증언자들이 몇가지의 중요한 증거들을 매니저인 말콤이 숨기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낸시가 죽던 날 밤 그룹의 또다른 멤버가 아파트에 있었고 헤로인 거래가 있었다는 점, 현금이 도난당해 있고 문이 밖에서 열려 있었다는 점 등 제3자에 의해 살해됐을 가능성도 충분히 제기됐다.

글출처: All Music Guide, Sid's Way

이기선 (2003-09-23 16:33:59)
그는 Punk의 아이콘 이었지만 또한 가장 Punk를 변질시킨 장본인 이기도 하다. 과대포장된 그의 삶은 Punk의 파멸 그이상 그이하도 아니었다...

이규환 (2004-01-15 11:40:42)
펑크록의 종말을 앞당긴 혹은 이중성을 보여준 인물이기도 하지만 역시 펑크록의 전성기를 이끈 인물. 음악적으로는 형편없었다고 하나 시드비셔스 시절의 섹스피스톨즈에 영향을 받은 수많은 펑크밴드들은 보면 단지 음악을 만들고 못만들고에 대한 영향이 다가 아닌듯.
과대평가도 싫지만 어느날 갑자기 쓰레기 취급하는 과소평가도 NO!


씨드 (2004-01-27 10:19:40)
why dont you shut your fuckin' mouth

강경화 (2005-06-07 01:18:07)
시드싱 앨범에선 2번이 좋고...거대한 록클롤 사기 앨범에선...커몬 에브리바디,섬띵 엘즈,마이 웨이가 시드가 부른 노래 들..

김정운 (2006-05-31 17:11:03)
ㅠㅠ보고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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