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 Vicious 는 1957년 5월 10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John Beverley, Simon Ritchie 등 그의 이름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보통 두가지 이름을 혼합한 "John Simon"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그의 어머니인 Anne Beverley는 남편없이 혼자 살았으며 때때로 법이 허용하는 범위내의 마약중독자이기도 햇다.(시드의 주된 사망원인이 어머니가 구해다준 마약 때문이었다는 것은 이미 어느정도 정설로 굳어져 있다.)
어린 사이먼은 런던거리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했고, David Bowie, Roxy Music, T. Rex등의 글램로커들은 어릴적 그의 우상이었다. 때때로 사이먼은 그들의 옷차림을 흉내내기도 하였다.
1975년에는 학교에서 가장 친한 친구였던 John Lydon을 만나게 된다. 라이든은 자신의 햄스터와 비슷하게 생긴 사이먼에게 Sid Vicious라는 이름을 붙여주는데 시드 자신은 그 이름을 무척 싫어했다고 한다. 존 라이든과 시드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빈 건물등을 거처삼아 지냈고, 지하철 등에서 구걸을 하기도 했다. 이후 라이든이 Johnny Rotten이라는 이름으로
Sex Pistols에 가입하자 시드는 밴드의 열성적인 팬이 되었고 포고(pogo)라는 춤을 처음 선보인다.(포고댄스의 유래는 공연장에서 밴드의 모습을 좀 더 잘 보기 위해 뒤에서 펄쩍펄쩍 뛰던 행동이었다. 시드 비셔스를 가리켜 펑크계의 처비체커(트위스트춤을 처음 추기 시작한 가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시드는 피스톨즈의 열성적인 팬들로 구성된 Bromley Continent 의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밴드
Siouxsie & the Banshees의 드러머로 첫 공연을 하는데, 이 시절부터 시드는 공연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리는 특별한 재능을 보이기 시작한다.
Damned의 100클럽 에서의 공연중에는 공연장위로 깨진 맥주병이 날아다녀 한 소녀가 이 병에 맞아 한쪽 눈을 실명하는 사건이 벌어져 경찰에 체포되기도 한다.(소녀의 눈이 다쳤는지에 대해서는 실제로 정확히 판명된 바 없다. 단지 소문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1976년 6월에는 유명한 음악 저널리스트인 Nick Kent가 공연장에서 시드비셔스에게 자전거 체인으로 두드려 맞는 사건이 발생한다.
1977년에
Sex Pistols는 Glen Matlock을 해고하고 자니로튼의 강한 추천에 의해서 시드를 새로운 베이스연주자로 맞아들인다. 시드는 전혀 베이스를 연주할줄 몰랐었으며 이미 이때부터 대중매체에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히기 시작했다. 1977년 초, 시드는
피스톨즈에 합류했고, 같은해
Johnny Thunders and the Heartbreakers가
Clash,
Damned와 U.K 투어를 위해 영국에 도착한다. 여기에는 그들의 열렬한 추종자이자 그루피, 또 헤로인 중독자이고 이미
Heartbreakers의 드러머인 Jerry Nolan과 한차례 염문을 뿌렸던 Nancy Spungen이 동행했다.
이때부터 시드는 급속히 자기파멸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시드는 낸시의 친구로 알려진 린다 Linda Ashby의 집에서 처음 낸시를 만났다. 세간에 알려진대로 낸시가 처음으로 시드에게 약을 가르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미 1년반 전부터 마리화나와 스피드에 익숙해 있었다. 시드가 처음으로 헤로인을 시작하게된 계기는 영국순회공연을 시작한
Johnny Thunders에 의해서인데
Johnny Thunders는 런던 펑크신에 처음으로 헤로인을 소개시킨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시드는 Melody Maker와의 인터뷰에서 자신과 낸시는 소울메이트이며 그녀 이외는 어느 누구도 사랑해 본적이 없으며 그녀 없이는 살지 못할 것이라고 얘기하곤 했다. 자니로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드는 낸시 스펑겐과 함께 급속도로 헤로인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Sid Vicious의 첫 번째
피스톨즈와의 공연은 1977년 4월 4일에 있었다. 베이스 연주를 위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데뷔앨범의 녹음도중 그는 녹음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술과 약에 만취해 나타났고 밴드는 글렌을 다시 고용해 앨범의 거의 모든 트랙의 녹음을 완성하였다.
온나라가
Sex Pistols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한 그 해, 시드의 친구들은 그의 여자친구 낸시를 그에게서 떼어놓고 헤로인 중독에서 벗어나게 하려 했지만 모두 헛수고로 끝나고 말았다. 1978년 1월
Sex Pistols는 악명높은 미국투어를 시작한다. 낸시와 떨어져 있는 동안 자니는 그에게 헤로인을 끊을 것을 종용했으나 이미 통제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피스톨즈의 마지막 공연 끝난 후 삼 일 뒤 시드는 헤로인 과다복용에 의한 고통을 겪기 시작했고 뉴욕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급기야는 혼수상태에 빠진다.
영국으로 돌아온 후 시드는 자니의 도움으로 헤로인 중독을 거의 치료하고《Great Rock 'n' Roll Swindle》의 촬영을 위해 파리로 떠난다. 여기서 시드는 "My Way" 와 Eddie Cochran의 "C'mon Everybody"를 녹음한다. 1978년 시드와 낸시는 뉴욕으로 떠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Vicious White Kids라는 밴드와 함께 영국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한다. 여기에는기타리스트 Steve New(전
Generation X의 기타리스트), 베이시스트 Glen Matlock, 드러머 Rat Scabies(
Damned의 드러머) 가 같이 한다.
뉴욕에 도착한 시드는 뉴욕의 연주자들인 기타리스트 Barry Jones, 기타리스트 Steve Dior 그리고
New York Dolls의 베이스 연주자였던 Arthur Kane, 드러머 Jerry Nolan과 함께 Idols라는 밴드를 결성해 라이브 앨범《Sid Sings》를 1979년에 발표한다.(버진에서 정식으로 발매된 최악의 음질을 자랑하는 라이브 앨범이다. 시드의 오리지널곡은 단 한 곡도 없다.) 대부분의 곡들은
Sex Pistols,
New York Dolls,
Heartbreakers의 커버버전과《The Great Rock 'n' Roll Swindle》에서의 곡들이 주를 이루었다.
1978년 10월 12일 시드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낸시가 첼시호텔 목욕탕에 칼에 찔린채 죽어있는걸 발견한다. 약물 중독상태이었던 그는 전날 밤 벌어졌던 일들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고 경찰에 체포된다. 경찰이 시드에게 왜 그녀를 죽였느냐고 질문하자 시드는 "나는 개이기 때문이다. 미친개이기 때문이다.(because I am a dog. A dirty dog.)"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버진 레코드사에서 보석금을 내고 그를 풀어주었으나 이후 시드는 여러차례 자살을 기도한다. 12월 9일 Max's Kansas City 클럽에서 시드는
Patti Smith의 친오빠인 Todd Smith의 여자친구에게 추근대다 이를 제지하려던 Todd Smith의 얼굴을 깨진 병으로 그어 다시 한번 경찰에 체포된다.
1979년 2월 1일 풀려난 시드는 그의 어머니로부터 질나쁜 헤로인을 다량으로 건네받고 약을 복용한 다음날 아침 죽은채로 발견된다. 그의 나이 21살이었다. 낸시 스펑겐의 살해사건은 여전히 미해결로 남아 있다. 몇가지의 추측들이 난무하지만 시드의 자백은 헤로인을 얻지 못하자 그것이 둘사이의 싸움으로 이어져 결국에는 그녀를 칼로 찌르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낸시는 부상을 입고 거의 옷을 걸치지 못한 상태였으며 몇시간 후에 사망했다.
하지만 시드는 심한 헤로인 중독으로 그날 밤 사건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고 전해지며, 일부 증언자들이 몇가지의 중요한 증거들을 매니저인 말콤이 숨기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낸시가 죽던 날 밤 그룹의 또다른 멤버가 아파트에 있었고 헤로인 거래가 있었다는 점, 현금이 도난당해 있고 문이 밖에서 열려 있었다는 점 등 제3자에 의해 살해됐을 가능성도 충분히 제기됐다.
글출처: All Music Guide, Sid's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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