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램록'에 해당되는 글 13

  1. 2009/09/19 Punk77 DEAD END KIDS - Glad All Over(1977, CBS)
  2. 2009/04/05 Punk77 MUD - Mud Rock(1974)
  3. 2008/12/20 Punk77 T-Rex
  4. 2008/10/12 Punk77 Barry Blue - Dancin' (On A Saturday Night)(1974)
  5. 2008/08/21 Punk77 Jobriath - World Without End(1973)
  6. 2007/05/10 Punk77 BERLIN BRATS (4)
  7. 2007/05/07 Punk77 DAVID JOHANSEN
  8. 2007/05/04 Punk77 SILVERHEAD
  9. 2007/05/04 Punk77 NEW YORK DOLLS
  10. 2007/05/04 Punk77 SW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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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의 글램록밴드 Dead End Kids는 1977년 초 The Honeycombs의 곡을 리메이크한 데뷔싱글 "Have I The Righ?"을 발표해 싱글차트에서 큰 성공을 거두자, 같은해 데뷔앨범 「Breakout」(1977, CBS) 에 다시 한번 Dave Clark Five의 "Glad All Over"를 리메이크해 수록하고 싱글로도 발표한다.

Barry Blue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싱글들과 유일한 앨범 「Breakout」(1977, CBS)은 대중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고, 그들이 바라던 대로 밴드에 유명세를 가져다 주기도 했지만 계속 지속되지 못하고 2년이 안되는 활동기간을 끝으로 밴드의 이름은 잊혀지고 만다.  - Bay City Rollers의 아류라는 선입견이 악재로 작용했던 것 같다. 실제로 이들은 Bay City Rollers의 오프닝 밴드로 등장했던 적도 있다.

유일한 앨범은 2007년에 Cherry Red 산하의 70년대 글램록 전문 레이블 7T's에서 CD로 재발매됐는데 최초 발매시 수록되지 않았던 3곡의 보너스 트랙을 포함하고 있다.

"Glad All 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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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9 16:41 2009/09/19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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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ippie Hippie Shake


Dyna-Mite/The Cat Cretlin/Tiger Feet(Med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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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itter Rock과 Glam Rock의 차이점들을 구분하려 든다면 영국 내에서만 불리워졌던 이름이라는 점 외에도 70년대 초중반 차트에서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50년대 로큰롤과 60년대의 버블검 사운드, 후에 등장하는 디스코 리듬까지 듣기 쉬운 요소들이 골고루 섞여진 Glitter Rock은 Mud나 Sailor, Gary Glitter, Showaddywaddy 같은 밴드들이 차트에서 넘버원 히트를 기록하면서 당시에는 일반적인 팝과 큰 차이점을 찾아볼 수 없는 장르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연유에서인지 최근까지도 그 영향력이 계속되고 있는 아트록이나 프로그레시브록 성향의 Glam Rock에 비해 Glitter Rock은 사실상 그 자취를 완전히 감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Mud Rock」(1974)은 RAK에서 발표한 첫번째 LP로 이전에 큰 히트를 기록했던 Mud의 싱글메들리와 50년대 로큰롤 커버들이 관중들의 가짜 함성소리와 함께 녹음되어 있다. 공식적으로 발매된 첫번째 LP이긴 하지만 모음집의 성격이 강한 Mud의 팬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뒤에 발표되는 「Mud Rock, Vol. 2」(1975)와 함께 Mud의 행보를 가장 효과적으로 정리해 놓은 앨범이라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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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5 00:17 2009/04/05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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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x

Band Information/T·U·V·W·X·Y·Z | 2008/12/20 20:09 | Punk77
1967년 결성되어 여러 멤버들이 있기는 했지만 마크 볼란의 밴드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만큼 그의 카리스마는 밴드 내 여러 구성원들을 압도했다. 초기에는 영국의 포크 락 듀오인 티라노사우러스 렉스로 시작해서 락 쪽으로 사운드를 강화해 가고 화려한 치장 등으로 데이빗 보위와 함께 글램 락이라는 씬을 만들어 나갔다.

미국에서는 “Get it on” 한 곡의 히트밖에는 없었지만 영국에서는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어 자신의 TV 쇼를 진행하는 위치까지 올랐다. 하지만 그는 불행하게도 1977년 글로리아가 운전하던 차의 사고로 죽고 밴드는 1978년 해산하였다. 그의 음악은 소비적인 것으로 여겨졌지만 돌이켜 보면 현재도 그의 영향력은 놀라울 정도다. 하드 락이나 메탈 벤드들은 밴드의 이미지와 강하게 지속되는 기타 음을 가져왔고, 펑크 밴드들은 하이힐이나 깃털 옷 등은 버렸지만 그의 3코드 주의와 팝 미학은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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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0 20:09 2008/12/2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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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램록 뮤지션 배리 블루가 활동 기간 동안 발표한 두 장의 LP중 첫 번째 LP <Barry Blue>(1974)에 수록된 곡이다. - Barry Blue는 데뷔 때부터 계속해서 싱글을 발표했는데 중간중간에 싱글곡들을 모은 앨범 <Barry Blue>와 <Hot Shot>을 발표했다.

Barry Blue는 글램록 뮤지션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몇 곡의 글램록 클래식을 남겼고, 뉴웨이브/디스코 아티스트들의 프로듀서로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Barry Blue의 곡들은 2000년대 들어서 히트곡 모음집으로 CD화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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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2 13:20 2008/10/12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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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음악 역사상 가장 훌륭한 글램록 앨범을 발표하고도 활동 당시 철저하게 외면받았던 Jobriath의 병반 중의 명반 <Jobriath>(1973) 수록곡. 후에 많은 펑크/뉴웨이브 계열 뮤지션들에 의해 재평가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그 존재감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Velvet Goldmine에서 Maxwell Demon이라는 이름으로 브라이언 슬레이드가 철저하게 카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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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1 05:18 2008/08/21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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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bers:
John Haft, Rick Wilder, Keith Hages, Frank Kitchin, Rick Sherman

제임스 브라운이나 롤링스톤즈 등의 블루스풍의 로큰롤에 뿌리를 두고 있는 헐리웃 출신의 Berlin Brats는 글램/펑크적인 이미지와 음악스타일로 활동시기 동안 계속 New York Dolls와 비교됐다.

젊은층의 많은 지지를 받던 밴드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알콜중독자나 마약중독자 등의 모습으로 기억되었고, 밴드를 스타로 만들려는 매니지먼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이를 거부하며 77년 6월, 밴드를 해산하고 Slicks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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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0 16:33 2007/05/1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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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rank Kitchin 2009/05/16 05:10

    That is not Frank Kitchin

    • Punk77 2009/05/19 01:44

      I quote it from sleeve note. I think there is some difference between pictures and text. thank you for infomation.

  2. Frank Kitchin 2009/05/19 06:31

    I was told they didn't have a picture with me in it.

    • Punk77 2009/05/19 15:43

      Yes, I understand the meaning of your words. anyway it is an honor to meet ex-Berlin Brats member on the web. Thank you for your visi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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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초 New York Dolls는 밴드의 기이한 모습으로 실력을 평가받지 못한 그룹이다. 그들에게 들려오는 것은 불명예 뿐이었으며 그들의 독특한 연주력은 평가대상에서 제외되곤 했다. 그러나 몇몇 비평가들에 의해 그들의 음악은 혁신적인 것으로 평가받기도 하였다. 이후 New York Dolls가 활동정지를 선언한 1974년 이후 그들의 행적을 아쉬워 하던 팬들은 78년 데이빗 요한슨 (David Johansen)의 새로운 솔로활동을 반갑게 맞이하기도 한다.

데이빗 요한슨은 뉴욕의 스테이튼 아일랜드 태생으로 그곳에서 쭉 자라왔다. 알다시피 스테이튼 아일랜드는 로큰롤이 특별히 인기 있었던 곳은 아니었다. 데이빗은 그때를 다음처럼 회상했다.

"나는 많은 형제들 사이에서 자랐다. 나의 형과 누나는 로큰롤에 빠져 있었는데, 내 나이가 4살쯤 되었을 때다. 나는 에벌리 브라더스(Everly Brothers)의 "Bye Bye Love"같은 곡을 따라 부르며 노래하길 좋아했다. 그리고 이후 본격적으로 로큰롤에 빠지기 시작한 때는 Gary U.S.Bond의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나이가 조금 들어 스스로 자신을 챙길줄 알게된 이후부터 집에서 지긋지긋한 녀석으로 낙인찍혀 버렸다.나는 친구들과 그리니치 빌리지나 타임즈 스퀘어로 놀러가길 좋아했었는데 아무도 어린아이가 들어가는 것을 눈여겨 보지 않아 쉽게 출입할 수 있었다. 이후 십대가 되면서 음악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10대 후반 New York Dolls를 결성,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팬들의 반응에 놀라기 시작햇다. 관중으로 있는 많은 아이들의 거친 모습들은 마치 미친 것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그들을 흥분시킬 만한 많은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공연이 펼쳐지는 댄스홀의 모든 아이들은 놀라우리만큼 우리 음악을 좋아하는 매니아들이었으며 우리가 그들의 밴드가 된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우리의 연주는 뉴욕의 머서 아트 센터 (Mercer Art Center)에서 한밤중에 시작되곤 했다. 유머와 진지한 연주자세, 그리고 세상의 모든것을 경멸하는 가사는 일반적인 록밴드와는 확실히 구분되는 양상을 띄고 있었다."

많은 팬들의 형성으로 인해 New York Dolls는 머큐리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했으며 곧 셀프타이틀 데뷰앨범 를 발표한다. 그러나 많은 공연활동 등의 홍보에도 그들의 음반 판매고는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으며 이것 때문에 멤버들간에 개인적 문제를 야기시키게 된다. 자니 선더스(Johnny Thunders/guitar), 아서 케인(Athur Kane/bass),제리 놀란(Jerry Nolan/drums)과 함께 데이빗 요한슨(New York Dolls 시절에는 "H"란 이름으로 잘 알려짐)은 6인치나 되는 플랫폼 슈즈, 립스틱, 과다한 분장 등으로 영국 팬들에게 선보였지만 여성인지 남성인지 구분할 수 없는 그들의 용모에 혼동스러워 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클럽에서 연주하려고 들러갈 때 우락부락하게 생긴 클럽 매니저나 출연 계약을 맺은 에이전트사로부터 기회를 박탈 당하기도 한다. 한 예로 74년 로스엔젤레스의 록시 클럽에서 있었던 일인데 무례한 행동과 공연 예정시간에 도착하지 않아 공연을 하지 못하게 됐는데 이 당시 상황을 데이빗은 그들의 매니지먼트사가 밴드의 홍보를 제대로 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우리는 록시클럽 매니저가 얘기한 것처럼 공연시간에 늦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하던대로 행동했다. 우리는 단지 즐겁게 하려고 했을 뿐인데.... 그들은 우리의 팬들을 어떻게든 얌전하게 만들려고 했다. 우리를 이상하게 보았으며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모욕을 당한것 같아 기분이 몹시 안좋았다. 예전에 시골에서 그런 경우를 당한 적은 있지만 이런 대도시에는 처음이었다."

75년 New York Dolls의 해체후 많은 미디어에서는 데이빗 요한슨의 거취에 대해서 주목하기 시작했으며, 데이빗 자신도 음악계에 새로 진출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77년CBS산하의 블루 스카이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 리차드 로빈슨(Richard Robinson)의 프로듀스로 앨범제작에 들어간다. 그의 셀프 타이틀 솔로 데뷔앨범《David Johasen》은 78년에 나왔는데 곧 영국과 미국으로 투어를 떠난다. 예전의 화려한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채 드리고 독특한 의상도 입지 않은 채 음악으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준 공연을 끝낸 데이빗은 이후 New York Dolls의 전 멤버였던 실베인 실베인 의 도움으로 2집을 만들게 되며 "Funky But Chic", "Frenchett", "Lonely Tenement"등을 발표한다.

새로운 앨범《In Style》은 79년에 발매되는데 그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던 R&B, 소울, 레게에 영향을 받은 많은 곡들을 발표하게 되는데 그중 "Melody", "Swahheto Woman", "Flamingo Road"를 대중에게 널리 알린다. 이 앨범은 그의 작곡 실력이나 레코드 뮤지션으로서 많은 발전을 이룬 앨범으로 평가받게 되며 판매면에서도 좋은 성과를 올려 소속 레코드사를 기쁘게 한다. 세번째 앨범《Here Come The Night》은 음악적 발전을 볼 수 있는 앨범이었지만 예전같은 호평을 얻어내지는 못한다. 대부분의 곡을 전 비치 보이스의 멤버였던 블론디 채플린과 같이 만들었는데 "You Fool For You", "My Obsession", "Here Comes The Night" "Rollin' Job"등이 그들의 작품이며 블론디는 이 음반에서 기타와 백킹보컬로 참여해 주기도 했다. 데이빗은 조롱하는 투로 자신의 세번째 앨범에 대해 다음처럼 말했다.

"나는 이 앨범을 이웃인 윌리에게 바치겠다.우리가 새 앨범을 위해 아파트에서 리허설을 하고 잇을때(기타 두대, 베이스 한대, 피아노, 오르간, 드럼머신을 가지고), 윌리는 항상 말하길 '오우, 당신네들이 이사하는 소리가 들리는군!' 나는 나중에서야 그 소리가 무슨 뜻인지 알았는데, 그것은 시끄러운 소음을 만드는 우리를 작당해서 쫓아내려는 음모였다. 그래서 내 방의 문고리에 다음처럼 쓴 쪽지를 걸어놓았다. '이 방은 당신처럼 살기 위해 빌린 것이지 절대 스튜디오용으로 빌린 것이 아님.' 결국 리허설 작업은 스튜디오를 빌려 작업했으며 순조롭게 작업은 진행해 갔지만 이말은 꼭 남기고 싶었다."

다음 앨범인 라이브 앨범《Live It Up》은 미리 만들어진 곡을 새롭게 편곡해 담은 모음집 형식이 아니라 라이브 앨범으로 발매했다. 앨범에는 애니멀스의 곡들을 메들리로 만든 곡 "Build Me Buttercup"이 미국 차트에서 오랫동안 머물기도 한다. 다음 앨범인 라이브 앨범《Live It Up》은 미리 만들어진 곡을 새롭게 편곡해 담은 모음집 형식이 아니라 라이브 앨범으로 발매했다. 앨범에는 애니멀스의 곡들을 메들리로 만든 곡 "Build Me Buttercup"이 미국 차트에서 오랫동안 머물기도 한다. 80년대 중반 데이빗은 맨하튼 연예계에 진출해 버스터 포인덱스터(Buster Poindexter)라는 예명으로 여러 나이트 클럽에서 연주를 하기도 했다. 86년 3월까지 아무런 솔로앨범을 발표하지 않았을때, 머큐리 레코드사는 초기 New York Dolls의 곡들을 담은 앨범 《Night Of The Living Dolls》란 타이틀로 발매하기도 한다. 87년 데이빗은 RCA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Buster Poindexter》를 발표하며 미국 종단 투어를 펼친다. 이 앨범에 대해 데이빗은 이렇게 평했다.

"많은 나의 곡들은 나의 레코드에서 얻은 많은 다양한 장르에서 영향받은 곡들이 많았는데 그러한 것들은 나의 록 콘서트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후 예전 동료 두명과 함께 집 근처의 트램프(Tramp)라는 바에서 연주하며 많은 곡들을 만들어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연주하던 대부분의 곡들을 라이브에서 연주했으며 앨범에 수록했다. 이 앨범은 87년에서 88년까지 빌보드 차트에 머물기는 하지만 베스트 셀러가 되지는 못한다. 이후 88년 데이빗은 영화《Candy Mountain》에서 자신을 보여주기도 한다.

출처 <핫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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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VERHEAD

Band Information/N·O·P·Q·R·S | 2007/05/04 17:07 | Punk77
TV배우로도 유명한 Des Barres와 후에 Blondie의 베이스 연주자로 유명해진 Nigel Harrison가 중심이 되 1971년 결성한 글램록 밴드이다.

Steve Forest (guitar), Rod Davies (guitar), Pete Thompson (drums)등 5명의 멤버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1972년 Tony Edwards에 의해 Deep Purple의 레이블에 스카우트 되어 같은해 Deep Purple의 엔지니어였던 Martin Birch가 프로듀스한 데뷔앨범 <Silverhead>을 발표한다.

데뷔앨범은 에너지 넘치는 헤비사운드의 걸작앨범이었지만 다른 글램록 밴드들처럼 음란한 행동과 공격적인 태도로 언론의 공격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Steve Forest (guitar)가 밴드를 그만두게 된다. 이후 새로 영입된 기타리스트 Robbie Blunt와 함께 한 다음앨범 <16 & Savaged>은 전통적인 하드록에 근접한 사운드를 만들어 냈으며, 앨범발표와 함께된 투어로 인해 1974년에는 일본과 함께 글램록의 주요도시였던 뉴욕에서도 많은 팬층을 확보하게 된다.
이 기간동안 Des Barres는 소위 '수퍼그루피'라고 불리웠던 배우 Pamela Miller를 만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밴드는 오래 가지 않아 해산을 하게 되고 만다.

Des Barres는 Pamela Miller와 결혼했고 Nigel Harrison은 Doors의 멤버였던 Ray Manzarek의 솔로앨범에 참여하게 된다. 이후 Nigel Harrison은 Ray Manzarek과 Nite City라는 밴드를 결성하기도 했으며 70년대 말부터는 Blondie로 유명해지게 된다.
Robbie Blunt는 Chicken Shack이라는 밴드를 결성하지만 좋은 반응을 얻어내는데 실패하고 후에 Robert Plant의 히트싱글인 'Big Log'에 참여하며 이름을 얻는다. Des Barres는 80년대 초반 Detective라는 Led Zeppelin풍의 밴드를 결성해 Swansong에서 앨범들을 발표했고, Steve Jones, Andy Taylor같은 펑크/뉴웨이브 연주인들과 함께 솔로활동을 해가며 배우로도 어느정도 성공을 거둔다. 80년대 중반에는 Power Station에 참여해 'We Fight For Love(영화 Commando의 주제가)'를 녹음하고 Power Station의 순회공연에 참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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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4 17:07 2007/05/04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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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음악역사상 가장 많은 로큰롤밴드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던 밴드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New York Dolls는 특히 펑크와 sleaze-metal(80년대 중반 인기를 모았던 글램 성향의 메틀 밴드들)밴드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Kiss도 데뷔당시 New York Dolls를 모델로 삼았었다.)

1972년, David Johansen(vocals), Johnny Thunders(guitar), Athur Harold Kane(bass), Sylvain Sylvain(guitar), Jerry Nolan(drums)의 멤버들로 정식 데뷔했으며,  Rick Riverts와 Billy Murcia(1972년 11월 사망)가 이전에 드러머로 거쳐간 바 있다.
밴드는 립스틱, 하이힐, 몸에 붙는 가죽옷 등, 뉴욕 뒷골목 식의 요란하게 눈에 띄는 글램록의 이미지로 먼저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1973년에 Stooges, Rolling Stones, MC5의 영향을 받은 셀프 타이틀 앨범《New York Dolls》로 데뷔한다.

데뷔앨범은 마이너 히트를 기록하면서 록음악 역사의 한부분을 장식하게 되지만 여전히 호감 받지 못하는 외모와 정통적이고 활기찬 로큰롤 음악의 부조화는 최고 아니면 최악이라는 논쟁거리를 계속 만들어냈다. 데뷔앨범은 폭넓은 반응을 얻어내지만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어 발표된《Too Much Too Soon》은 당시 밴드의 상황을 잘 나타내 주는 타이틀이었는데 이때부터 밴드는 서서히 알콜과 약물의 유혹에 빠져들게 된다.(보컬리스트 David Johansen은 이런 밴드멤버들의 태도에 대해 심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전 앨범들보다 완성도가 높아진 두 번째 앨범은 펑크/글램 록의 명반으로 평가 받았지만 언론은 계속해서 혹평을 해댔고, 밴드 역시 알콜 약물 등 내부문제로 서서히 분열되기 시작한다.

이후 Johansen은 솔로로 독립했고, ThundersHeartbreakers를 결성했다. New York Dolls는 잠시동안 Blackie Lawless(현재 W. A. S. P의 보컬리스트)를 기타리스트로 맞아 계속 활동을 이어나갔으나 1975년 해산하고 만다. 한편 드러머인 Jerry Nolan은 폐렴과 뇌막염 치료를 받던 중 1992년 1월 14일 심장마비로 사망한다.《Red Patent Leather》는 깨끗한 음질은 아니지만 그의 사후에 발매된 레코드로 1975년 5월에 녹음된 라이브를 담고 있다.


손광훈 (2004-05-15 22:13:41)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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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

Band Information/N·O·P·Q·R·S | 2007/05/04 15:10 | Punk77
1978년, 드러머인 Mick Tucker와 보컬리스트 Brian Connolly, 팝 밴드 Wainwrght's Gentleman의 두멤버인 Steve Priest(bass), Frank Torpey(lead guitar)를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Sweetshop이라는 이름으로 클럽과 지방을 돌며 연주활동을 하며 기타리스트 Andy Scott (ex-Elastic Band, Mayfields Mule)을 합류시켜 기타리스트를 두명으로 늘리며 밴드이름을 Sweet로 줄인다.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라인업으로 1968년과 70년 사이에 네곡의 싱글을 녹음하는데 Fontana와 Parlophone을 통해 발매된다. 그러나 이 싱글들은 비평이나 상업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한다.

1970년은 밴드에게 중요한 해가 되는데 프로듀서 Phil Wainman과 매니저이자 히트제조기 작곡자인 Nicky Chinn, Mike Chapman과 함께 RCA에서 새로운 앨범을 발표한다. 1971년말 밴드는 세곡의 top 40곡을 내놓는데 "Funny Funny", "Co-Co", 그리고 "Alexander Graham Bell"이었다.

1972년에는 "Pappa Joe"가 11위까지 오르고 "Littlewilly"와 "Wig Wam Bam"이 모두 4위까지 오르며 이미지와 음악적인 면에서 글램록을 대표하는 그룹으로 자리잡게 된다. 1973년 1월에는 글램록의 고전 "Blockbuster"를 싱글로 발표해  No.1을 차지하며 밴드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1974년 밴드는 글램록 특유의 섹슈얼리티와 B급 이미지로 종종 라이브 클럽에서 출연을 거부 당하는 일이 벌어지는데 이후 '완전한' 록 앨범인《Sweet Fanny Adams》를 발표하며 유일하게 차트에서 재미를 보기도 한다. 이 앨범에서는 UK 차트 2위, 미국 차트 5위까지 진출한 "Fox On The Run"이 실려있다. 이곡으로 밴드는 Chinnichap(영국의 유명한 작곡 듀오-많은 밴드들에게 곡을 제공해 히트시켰다.)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났음을 증명했다.

Sweet는 이후《Give Us A Wink》,《Off The Record》,《Cut Above The Rest》등 세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Brian Connolly가 1979년 세번째 미국 투어 이후 밴드를 떠난다.

cocksparrer (2004-03-21 17:10:00)
we call it 'low glam'

조이라이더 (2004-12-05 23:05:25)
사랑은 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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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4 15:10 2007/05/0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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