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토펑크'에 해당되는 글 5

  1. 2007/05/10 Punk77 THE DOGS
  2. 2007/05/10 Punk77 THE FAST
  3. 2007/05/07 Punk77 RAMONES
  4. 2007/05/03 Punk77 MC5
  5. 2007/04/29 Punk77 DICTATORS

THE DOGS

Band Information/#·A·B·C·D·E·F | 2007/05/10 14:34 | Punk77
사용자 삽입 이미지
Richard Cromelin이라는 록평론가는 70년대 후반, LA Times에 기고한 글에 The Dogs를 가리켜 "Ramones에 대한 LA의 대답(answer)이라는 평가의 글을 덧붙였다.

LA 뉴웨이브신(당시 뉴웨이브라는 단어는 장르를 가르키는 말이 아니라 말뜻 그대로 새로운 음악/로큰롤을 일컫는 단어였음. 이 단어는 70년대 초반 뉴욕의 언더그라운드신을 중심으로 가끔씩 등장했다. 80년대 유행했던 뉴웨이브를 연상하지 말것.) 에 등장한 밴드들중 거의 최초의 Street Band로 기록되고 있는 The Dogs는 Lauren Molinaire, Mary Caldwell, Ron Wood의 3명의 멤버들로 이루어졌는데 Keith Richard(Rolling Stones), Johnny Thunders, Pete Townsend(The Who)에 영향 받은 기타사운드와 개러지펑크풍의 밴드로써는 드물게 여성멤버의 파워 넘치는 베이스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The Dogs는 MC5, Stooges등의 60년대풍의 개러지펑크와 Jimi Hendrix 같은 블루스풍의 헤비사운드를 혼합해 LA지역을 중심으로 팬들을 끌어모았으며 현재까지도 초창기 아메리칸 펑크신을 언급할때마다 빠지지 않고 기록되는 전설적인 밴드로 남아있게 되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2007/05/10 14:34 2007/05/10 14:34

트랙백을 보내세요

TrackBack URL :: http://vinylrock.net/blog/trackback/310

Post Comments

Serect
Submit

THE FAST

Band Information/#·A·B·C·D·E·F | 2007/05/10 14:27 | Punk77
사용자 삽입 이미지

photo: www.geocities.com/fasthomepage

1972년초 기타리스트 Miki Zone과 보컬리스트 Amand Zone 형제를 중심으로 결성됐다.
초기 글램록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으며 뉴욕펑크의 기초를 다진 선구자적인 밴드로 뉴욕의 비슷한 성향의 밴드인 New York Dolls나 Wayne County등과 함께 Max's Kansas City를 중심으로 연주활동을 했다.

1975년말에는 Zone가의 또다른 형제 Paul Zone이 보컬리스트로 들어오고 Mandy가 키보디스트로 자리를 옮긴다.  (Paul Zone이 들어올 당시 Dee Dee Ramone이 밴드멤버가 될뻔 했다고 한다. Ramones는 70년대 중반 The Fast의 오프닝 밴드로 출연하기도 했다.) 76-77년 사이에 밴드는 글램/펑크적인 사운드와 스파이크헤어, 나찌장식물등의 글래머러스한 이미지로 뉴욕록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멀게는 미네아 폴리스 출신의 Replacements에게까지 영향을 끼쳤다.

The Fast는 70년대 중반 Max's Kansas City에서 활동하던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의 모음집에 두 곡으로 참여한 후, 76-78년 많은 펑크밴드들이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하는 상황에서도 Max's Kansas City의 자체 레이블인 RAM과 계약중이었기 때문에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할 기회를 잃게 된다. (이 컴필앨범에 소속된 몇개의 밴드는 불행하게도 80년대가 되서야 데뷔앨범들을 발표했다. The Fast는 70년대 말의 평범한 펑크팝 스타일이 아닌 세련되고 에너지 넘치는 뉴웨이브 펑크를 들려준다. 지금 들어도 놀라운 사운드이다!)

1979년 펑크붐이 일어나면서 The Fast의 이름으로 보스톤의 The Rat이라는 클럽에서 연주를 하던 도중, 후에 The Cars의 보컬리스트가 되는 프로듀서 Ric Ocasek의 눈에 띄어 그의 초청으로 Electric Ladyland Studios에서 데뷰LP《For Sale》을 녹음한다.(이 앨범은 미키존 자신의 레이블을 통해 발표됐다.) 첫번째 앨범《For Sale》에서는 Max's Kansas City에 수록된 밴드 초창기의 2곡 이외에 Ric Ocasek이 프로듀스한 펑크팝 6곡이 수록되어 있다. 스완송에서 발매한 두번째 앨범《Leather Boys From The Asphalt Jungle》에서 밴드는 고딕풍의 록음악을 선보이는데 이때부터 Miki Zone 중심의 바이섹슈얼한 밴드의 이미지는 언론의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 시작했다.

84년이 되면서 폴과 미키는 밴드를 완전히 해산하고 일렉트로훵크의 대부라고 불리우는 Man Parrish의 지원을 받으며 게이뮤직의 성향이 짙은 뉴웨이브풍의 신스팝 밴드 Man 2 Man을 결성한다. Man 2 Man의 곡들은 좋은 반응을 얻으며 점차 지명도를 높이기도 했으나 1986년 12월 31일 Miki Zone이 에이즈와 코카인 과다복용에 의한 합병증으로 사망하면서 위기를 맡이한다. 폴 존은 90년대 초까지 Man 2 Man으로 계속 활동했고 현재까지도 음악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원문: The Fast의 인터넷 팬페이지에서 발췌
http://www.geocities.com/fasthomepag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2007/05/10 14:27 2007/05/10 14:27

트랙백을 보내세요

TrackBack URL :: http://vinylrock.net/blog/trackback/334

Post Comments

Serect
Submit

RAMONES

Band Information/N·O·P·Q·R·S | 2007/05/07 09:28 | Punk77
Johnny Ramone (guitar), Dee Dee Ramone (bass), Joey Ramone (drums)등 세명은 1974년 3월 30일 뉴욕의 Performance 스튜디오에서 데뷔한다. 두달후 매니저였던 Tommy Ramone이 드러머로 가입하면서 Joey가 보컬리스트로 자리를 옮긴다. 이후 유명한 CBGB에 고정출연하면서, 뉴욕 최고의 인기 펑크 밴드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50년대풍의 키취적익 해석, 60년대의 garage punk, 가죽자켓과 찢어진 청바지 등으로 대표되는 이미지와 함께 첫 앨범《Ramones》가 발표된다. 1976년 7월에는 "Suzi Is A Headbanger.", "Gimme Gimme Shock Treatment" 등이 담긴 두번째 앨범《Ramones Leave Home》와 함께 런던에서 영국의 펑크뮤지션들에게 모습을 드러낸다. 1977년《Rocket To Russia》는 첫 UK Top 30 곡인 "Sheena Is A Punk Rocker"가 수록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 앨범들에 비해 달라진 점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8년 8월 Tommy Ramone은 프로듀서로서 다시 일하게 되고 전 Richard Hell & Voidoids의 드러머인 Mark Bell이 Marky Ramone의 이름으로 새로 가입한다.《Road To Ruin》역시 이전 앨범에 비해 별다른 발전을 보여주지 못한 이후, 영화《Rock 'n' Roll High School》에 출연하고 음악도 담당하면서 프로듀서 Phil Spector를 만난다.
《End Of Century》는 Phil Spector의 프로듀스로 만들어졌고 Ramones의 전통적인 스타일과 Phil Spector 취향의 Girl-Group의 멜로디가 결합된 이 앨범은 UK 차트 10위곡인 Ronettes의 커버곡인 "Baby, I Love You"를 수록한다.

80년대 들어서도 여전이 데뷔당시의 음악 스타일을 고수하던 밴드는 Graham Gouldman을 프로듀서로 맞아들여 하드코어펑크적인 사운드를 수용한《Pleasant Dreams》를 발표한다. 하드코어펑크적인 면모가 채 가시지 않은 앨범《Animal Boy》에서는 "Bonzo Goes To Bitburg"라는 곡으로 로널드 레이건이 Nazis SS의 묘지를 방문한것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드러머가 C. J. Ramone으로 교체된후 90년에는 옛 CBGB의 동료였던 Deborah Harry, Talking Heads의 David Byrne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결성한 프로젝트 밴드 Tom Tom Club과 함께 미국 순회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마친다.


이기선 (2003-09-23 16:30:17)
만약 당신이 알고 있는 PUNK의 개념이 Attack과 Fun!그리고 Straight한 이미지라면..RAMONES는 그점에서 최고의 펑크밴드일 것이다.과연 펑크의 진정한 사운드적 의미는 무엇인지? Ramones를 듣지 않고서 Punk가 좋아졌다면 당신은 Punk가 아닌 다른 소스의 음악을 이미 듣고 있는 것이다.

도일만 (2004-08-06 06:00:40)
modonna가 소속한 사이어레코드사 소속의 미국펑크밴드, 미국 엔터이먼트 기획하에 성공한 펑크밴드, 굉장히 지루하고 단순한 음악들

이규환 (2004-08-06 13:33:59)
사이어 처럼 좋은 아티스트를 많이 확보하고 있는 레이블이 과연 몇개나 있을까? 마돈나 포함해서

나현주 (2005-03-01 20:42:39)
최고

성민석 (2005-03-23 10:29:39)
이기선님의 의견에 절대 공감

배결은 (2005-07-31 14:13:25)
아싸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2007/05/07 09:28 2007/05/07 09:28

트랙백을 보내세요

TrackBack URL :: http://vinylrock.net/blog/trackback/388

Post Comments

Serect
Submit

MC5

Band Information/G·H·I·J·K·L·M | 2007/05/03 16:04 | Punk77
글-임진모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중에서

사회변동을 제창하려고 태어난 혁명전문그룹
혁명이 개개인의 껍질을 벗고 서로서로의 팔에 안기도록 추진하는데 전적으로 바치는 것이듯 이 그룹은 전적으로 혁명에 바치는 그룹이다.
-존 싱클레어-
1967년 7월, 팝계에서는 이때를 흔히들 '사랑의 여름'이라고 칭하지만 미국의 디트로이트시에게는 '악몽의 여름'이었다. 자동차 공업도시인 이곳에서는 그때 흑인폭동이 일어났다.
디트로이트 경찰이 영업시간외 음주를 죄목으로 흑인 민주 집회에 참여한 74명의 흑인을 연행한 것이 발단이 된 경천동지의 이 사태는 분노가 폭발한 수천 명의 흑인을 진압하기 위해 공수부대를 비롯한 1만 6천명의 정부군이 동원되는 등 때아닌 전쟁을 방불케 했다. 총 2천2백92명의 사상자(42명 사망)를 냈고, 5천5백57명이 연행되어 수감됐다. 린든 존슨 당시 대통령은 "우리는 어떤 국가도 빫아서는 안되는 폭력과 비극의 일주일을 겪었다."고 말했다.
폭동은 진화되었지만 디트로이트 흑인폭동은 몇 개월 후인 68년 4월 4일 터진 마르틴 루터 킹 목사 암살 사건과 함께 '급진적' 사회운동을 폭발시키는 뇌관의 역할을 했다. 흑인 무장 단체인 '블랙 팬더즈'등 과격한 집단이 그 후 잇따라 결성되었고 대학생을 위시한 일부 양심적인 백인들도 흑인 운동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68년 대학가에는 소요와 시위가 끊이질 않았다.

디트로이트 흑인 폭동은 대중음악의 새로운 물결을 조성하는 분기점이 되기도 했다. 흑인 폭동을 계기로 흑인 음악인 소울(Soul)이 팝계의 전면에 부각되어 일련의 소울스타들(제임스 브라운, 오티스 레딩, 윌슨 피켓, 아레사 프랭클린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출현, 흑인의 긍지를 외쳤다.
록음악은 샌프란시스코의 애시드록으로부터 영국과 미국의 기타 영웅들의 귀를 째는 듯한 날카로운 기타 사운드로 주도권이 넘어갔다. 지미 헨드릭스,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 자니 윈터, 듀안 올맨 등 영국과 미국의 기타 플레이어들이 선사한 록음악은 기본적으로 흑인 블루스였고, 이들로 인해 시카고 블루스의 거목들인 B.B.King, 머디 워터스, 하울링 울프, 그리고 존 리 후커등이 부활해 재평가를 받았다. 경찰과 최루탄에 결연히 맞선 대학생들은 '피압박인종'인 흑인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이었다.

디트로이트 폭동의 저항정신과 파워가 실린 블루스 음악을 동시에 수렴한 그룹이 MC5였다. 지금은 거의 잊혀져 버렸지만(우리나라에서는 록팬들도 존재를 거의 알지 못하는 무명이다.) 이 시기의 록음악 성격을 정의하는데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밴드다.
이 그룹은 바로 그 디트로이트가 배출한 그룹이었다. MC5는 'Motor City 5'의 약자로, '자동차 도시의 5인'이라는 뜻인데, 자동차 도시는 디트로이트시의 별칭. 폭동이 발발한 67년 그 해 롭 타이너, 웨인 크래머, 프레드 스미스, 마이클 데이비스, 데니스 톰슨 등 다섯 명의 디트로이트 고교동창생들이 의기 투합해 그룹을 조직했다.
디트로이트 폭동의 격렬함을 보존하려는 듯 이 그룹은 오로지 '혁명'을 제창하기 위해 무대에 섰다. 혁명과 사회 변동에의 헌신이 이 그룹의 지향점이었다. MC5는 세상을 바꾸는데 잇어서 록 뮤직의 역할과 영향력을 신뢰했다. 이 그룹을 설명할때 꼭 함께 언급해야 할 인물이 있다. 이들의 매니저이자 정신적 지주인 존 싱클레어이다. 그는 블랙 팬더즈와 상통하는 백인의 과격 운동단체 '화이트 팬더 파티'를 결성한 혁명적 투사였다.
싱클레어는 '목적적'인 로밴드로서 MC5를 기획했다. 그는 '혁명이 개개인의 껍질을 벗고 서로서로의 팔에 안기도록 추진하는데 전적으로 바치는 것이듯 이 그룹은 전적으로 혁명에 바치는 그룹'이라고 강변했다.

그들의 무대는 잔혹하고 악의적인 언어들로 가득찼다.그들의 록 뮤직은 증오의 음악(Hate Music) 그 자체였다. 혁명을 부르짖는 게릴라들이 따로 없었다. 데뷔 당시부터 그들은 미국 국기를 몸에 두르고 모독 일색의 혁명적 구호를 외쳐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록 전문지 <크림>의 레스터 뱅즈의 MC5 기술은 압권이다.

"그들은 디트로이트 출신이다. 그곳에 깃든 적의를 능히 상상할 수 있지 않은가. MC5는 혁명과 연계되어 말뚝을 박은, 바스티유 감옥을 강습하는 신념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들의 앨범 모두가 원시의 바주카포 들이다. 그들은 격렬하게 움직였지만 사회적 양심을 소유하고 있었다."

MC5가 수면위로 부상한 계기는 68년 8월 시카고에서 개최된 민주당 전당대회였다. 대학가 데모가 절정에 달했던 이 무렵 반전과 인권투쟁의 슬로건을 내건 대학생들은 이 대회장을 기존 정치에 대한 반대 시위의 집결지로 삼았다. (이피의 리더 제리 루빈의 말 "시카고로 가자! 우리는 미래의 정치다!")
MC5도 싱클레어와 함께 시카고로 갔다. 그들은 그곳의 시위 군중들 앞에서 혁명의 신념을 주창하고, 사기진작을 위해 블루스 기조의 강력한 록 사운드를 연주, 센세이셔널한 화제를 모으며 일대 주목을 받았다.
록 역사는 싱클레어가 MC5 콘서트에서 행한 밴드 소개 멘트를 가장 선동적인 사회로 규정한다. 싱클레어의 목소리는 쉰 듯한 흑인 설교자의 그것과 유사해 목소리로 이미 청중을 휘어잡았다. 얼마나 선동적인가를 보자.

"형제 누이 여러분, 저는 저기 바다처럼 넓게 손에 손잡는 광경을 보고 싶습니다. '손들의 바다'를 보여 주십시오. 저는 모든 사람들이 굉음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여러분 저기 혁명의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저는 작은 혁명을 듣고 싶습니다."

박수만 치고 있던 관중들이 서서히 함성을 지르며 동요하기 시작한다. 싱클레어의 선동은 계속된다.

"형제 누이 여러분! 우리 각자가, 우리 모두가 문제를 일으킬 것인가 아닌가, 해결할 것인가 아닌가를 결정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여러분은 선택해야 합니다. 5초면 됩니다. 단5초, 지구상의 이곳에 여러분이 서있는 목적을 깨닫는 데는 5초가 걸릴 겁니다. 이제 '행동해야 할 시간'임을, '그것을 무너뜨려야 할 시간'임을 깨닫는데는 단 5초면 됩니다. 여러분! 증명할 시간입니다. 증명할 준비 됐나요? 준비됐어요? 제가 여러분에게 증명서를 드립니다. MC5입니다."

록 그룹 소개가 아니라 마치 시위 출정식의 연설에 가깝다. MC5는 혁명, 선동 이외에 '모독'으로도 제도권과 세차게 충돌했다. 69년에 선보인 데뷔앨범 <고통을 걷어차라>(Kick Out The Jams)의 타이틀 곡의 제목 뒤에는 강도높은 욕설이 붙었다. 'Motherfucker' 그것이었다. 'fuck'의 원조격인 컨츄리 조 앤 더 피쉬는 저리 가라였다. 이때문에 음반을 출반한 일렉트라 레코드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했다. 일부 레코드소매상들은 이 음반의 판매를 거부했다. 그러자 MC5는 대비책으로 지하신문을 통하여 앨범 광고를 때렸고, 음반을 거부했던 한 레코드 매장의 창문에는 'fuck you'라 휘갈겨 써붙이기도 했다.
그때 싱클레어는 마리화나 소지 및 복용죄로 체포되 투옥되었다. 골치덩이 MC5의 처리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던 일렉트라사는 이르 빌미로 싱클레어와 그룹을 도중하차 시켜버렸다. 매니저와 소속 레코드사를 동시에 잃어버렸지만 '곤경' 속에서도 앨범이 차트 30위권에 진출한 것에 가능성을 본 애틀란틱 레코드사가 그들과 계약을 체결, 70년에 두번째 음반인 <미국에 와서>(Back In The USA)를 낼 수 있었다. 이 작품은 비평가들로부터 헤비메틀의 고전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판매는 지극히 저조했고 차트순위는 137위에 머물렀다. 참고로 이 음반을 프로듀스한 인물운 훗날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매니저가 된, 당시의 록 평론가 존 랜도였다. 이듬해 발표된 <하이 타임>(High Time) 역시 걸작이라는 평을 들었지만, 결과는 영점이었고 숫제 차트에 명함도 내밀지 못하였다.

애틀란틱사로부터 계약을 해제당한 이들은 새출발을 기하기 위해 영국으로 향했지만 멤버들의 탈퇴로 곧 해산되어 버리고 만다. 혁명 제창은 그것으로 마감되었다.
MC5는 디트로이트의 정서에 걸맞게 귀를 째는 듯한 소음의 사운드를 추구했다. 그리하여 이념적 시각에서 혁명록 혹은 게릴라록이라고 불렸지만 사운드적으로는 '에너지록'으로 통했다. 리드싱어 롭 타이너는 MC5의 사운드를 '전지가 전기에 입력되듯 자신들의 전기 에너지가 감상자의 감가기관을 충전한다'는 뜻에서 '재감각발생기(Resensifier)라 명명한 바 있다. 평론가들은 MC5를 당시 태동하고 있던 '헤비메틀의 원조'로 규정하기도 한다. 디트로이트 폭동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MC5를 위시해 '이기 앤 스투지스',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등 시끄러운 헤비메틀 밴드 상당수가 디트로이트 출신이어서 디트로이트는 헤비메틀의 메카가 되었다.

MC5의 양날개 '시끄러운 사운드'와 '혁명적 메시지'는 70년대 말 지축을 흔들었던 펑크록 밴드들이 재발굴하여 기본틀화했다. 특히 혁면정신이 강했던 섹스 피스톨즈, 클래시 등 양국의 펑크 밴드들이 MC5의 정신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섹스 피스톨즈가 훗날 굴지의 레코드사로부터 해제를 당하는 잇단 수난은 이미 MC5가 걸었던 길을 그대로 밟은 것과 다름없어 새삼 역사의 반복성을 실감하게 한다. 70년대 말의 펑크 폭풍으로 허공에 묻힐 뻔한 이 그룹의 이름은 다시 오르내리게 되었다. 80년대 초반에는 그드릐 앨범이 재발매 되기도 했다. 그레서 어느 평지는 '시대를 앞서갔다'는 의미에서 '60년대에 활동한 최초의 70년대 밴드'라 칭하고 있다.

MC5의 멤버들은 해산 후 제각기 음악활동을 전개했지만(특히 펑크 분야에서) 크게 주목받은 인물은 없다. 멤버 가운데 프레드 스미스는 80년 여성 펑크의 선두주자인 패티 스미스 와 결혼, 패티가 언급될 경우 가끔 곁다리로 끼고 있고, 코카인 소지죄로 옥살이를 한 바 잇던 웨인 크래머가 최근 그룹 '워스 낫 워스'의 싱글에 연주자로 이름을 내민 정도.
록계는 혁명에 헌신한 전대미문의 그룹 NC5를 보유함으로써 역사의 한 페이지만은 '진하게' 쓸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존재는 사라졌지만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 MC5가 록계에 남겨준 무형의 재산이었다.

이지훈 (2003-08-13 13:48:09)
대단히 멋지다...60년대 최고 시끄러운 앨범이같다.

Dorchick (2005-07-23 07:10:05)
너무 시끄럽고 분노가 가득하고 선동적이어서 듣다보면 괜히 화가남.
그래서 몇번 듣다 말았음. 밴드가 의도한대로 혁명정신이 있어야 좀 와서 꽂힐것 같음.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Band Information / G·H·I·J·K·L·M" 분류의 다른 글

IAN CURTIS (0)
JAPAN (0)
MILKSHAKES (0)
HANOI ROCKS (1)
HOLLYWOOD BRATS (0)
2007/05/03 16:04 2007/05/03 16:04

트랙백을 보내세요

TrackBack URL :: http://vinylrock.net/blog/trackback/353

Post Comments

Serect
Submit

DICTATORS

Band Information/#·A·B·C·D·E·F | 2007/04/29 15:22 | Punk77
RamonesSex Pistols가 데뷰하기 2년전인 1974년 뉴욕에서 결성된 Dictators는 일찌감치 펑크세대의 미학들을 보여주며주목을 받았다.

세가지 코드를 연주하는 단순하고 시끄러운 로큰롤의 전형적인 모습이 그러했으며, 패스트푸드, 프로레슬링, 심야 텔레비젼의 컬트 무비 등 다양한 매니아 취향의 요소들을 음악에 흡수하며, 고향에서 많은 팬들을 확보했으며 미국과 유럽지역에 광적인 팬들을 끌어모았다.

비록 상업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70년대와 80년대 로큰롤 세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시대의 개척자중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기타리스트인 Scott 'Top Ten' Kempner와 Ross 'The Boss' Funichello, 베이시스트 Andy Shernoff, 드러머 Stu Boy King를 초기멤버로 후에 전직 프로레슬러 였다는 보컬리스트 Handsome Dick Manitoba는 게스트 멤버에서 앨범 발표직전 정식멤버로 가입한다. 데뷔앨범에서 King은 Ritchie Teeter로 베이시스트는 Mark 'The Animal' Mendoza로 교체되었으며 Andy Shernoff는 키보드로 자리를 옮겼다. Epic에서 발매된 데뷔앨범이 인기를 얻는데 실패하자 1976년 Elektra와 계약을 맺은 밴드은 두번째 앨범이자 유일한 차트 진입 앨범인《Manifest Destiny》를 발표한다.

1978년《Bloodbrothers》가 흥행에서 실패하자 그룹은 레코드사로부터 계약을 해지당하고 Mendoza는 헤비메탈 그룹인 Twisted Sister로 떠난다. 그후 싱글들을 발표하기 위해 몇번의 재결합을 하고 1981년 카세트 테입으로만 발매된《Fuck'Em If They Can't Take A Joke》을 발표한다. 80년대 들어 기타리스트인 Scott 'Top Ten' Kempner는 또다른 로큰롤 밴드 Del-Lords를 만들어 몇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뉴욕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Manitoba와 Shernoff는 헤비메탈 밴드 Manitoba's Wild Kingdom에서 활동했으며 Ross 'The Boss' Funichello는 Shakin' Street에서 잠시 활동하다 현재는 헤비메탈 밴드 Manowar를 이끌고 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2007/04/29 15:22 2007/04/29 15:22

트랙백을 보내세요

TrackBack URL :: http://vinylrock.net/blog/trackback/299

Post Comments

Serect
Subm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