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아리랑 2007년 신작 달수의 저지 가능한 상승
◈ 제작의도
‘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똑같은 이야기’
무려 1갑자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히틀러가 지속가능한 권력을 꿈꾸고, 이에 대해 브레히트는 저지 가능한 상승이라 조롱한지 벌써 60년의 시간이 흐른 것이다.
브레히트가 1941년 시카고 갱단과 꽃배추시장 상인들을 통해 보여주려고 한 것은 무엇일까 미국의 자본주의 경제와 파시즘의 정치적 상승사이의 연관관계를 통해 돈과 정치적 권력의 밀착과 이에 대한 인간의 본질적 욕구에 대한 고찰을 보이려 했던 것이다.
6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간 21세기에 있어서는 돈이 곧 권력이고 권력이 바로 경제를 좌우하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하지만 이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이 존재한다.
인간에게 권력이란 무엇인가 굳이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자를 새로이 뽑는 올해 뿐 아니라 언제나 권력은 우리 주변에서 잡힐 듯 말 듯 부유하고 있다.
배추시장을 둘러싼 건달 달수와 국회의원 강독구. 그리고 배주조합의 상인들의 진흙탕싸움은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들을 거울에 비친 듯 투영한다. 드라마틱한 인간관계는 한편의 블랙 코미디와 같이 긴 여운을 남기게 될 것이다.

◈ 작품해설
번역 - 김미혜 (한양대학교 연극학과)
‘우화극’이란 부제가 붙어있는 《아르투로 우이의 저지 가능한 상승》은 합법성이란 미명하에 권력을 쥐게 된 아돌프 히틀러의 상승 과정을 미국의 갱 세계를 통해 상징적으로 극화하고 있다. 작품이 완성된 것은 1941년으로 브레히트가 핀랜드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때였다. 독일의 많은 브레히트 연구가들 중 《아르투로 우이의 저지 가능한 상승》가 히틀러의 상승과정을 히틀러의 실제역사를 근거로 그리고 있다는데 쉽게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그것은 히틀러라는 인물에 대해 역사적 죄의식 같은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는 독일인이 많은 것을 상기하면 이해가 간다. 이들은 차라리 작품속의 갱 두목인 우이와 시카고의 갱 두목이었던 알 카포네와의 유사성에 더욱 주목하고 싶어 하며 또한 작품의 형성과정을 보면 그들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브레히트는 1935년 겨울 《어머니》의 미국 공연을 위해 뉴욕에 갔다가 불법의 주류판매를 위한 영역 분배 다툼으로 공공연하게 벌어진 갱단들의 싸움을 목격하게 된다. 이 싸움은 갱 두목 더치 슐츠(Dutch Schultz)와 그의 심복이 죽는 것으로 끝이 났다. 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슐츠의 일상에서 히틀러가 권력을 확보하게 된 경위와의 기막힌 유사성을 본 브레히트는 갱단들의 싸움에 대한 신문기사들을 모아 분석한다. 이 중에는 프레드 파슬리(Fred Pasley)가 쓴 「뉴욕 갱의 전쟁」(Gang Wars of New York)이란 제목의 기사도 있었는데 여기에는 갱들의 역사, 싸움이 추적되고 있는 특히 알카포네가 시카고에서 암흑가의 제왕으로서 자리를 굳히게 되는 1929년 성 발렌타인 데이의 대학살(알 카포네의 부하들이 클라크 거리에서 상대편 갱단을 벽에 죽 세워놓고 총살한 사건)이 기술되어 있었다. 《아르투로 우이의 저지 가능한 상승》에서 우이가 로마일당을 제거하는 것은 이 대학살을 모방한 것이다. 브레히트의 작품들에 음악을 쓴 한스 아이슬러(Hanns Eisler)에 의하면 그와 브레히트는 미국에 머무는 동안 많은 갱 영화 검열에 참여했다고 한다. 1930년대 미국은 갱 영화의 붐이 일고 있었다. 브레히트가 《아르투로 우이의 저지 가능한 상승》에 당시의 체험을 얼마나 용해시켰는지는 아직 연구가 되어 있지 않지만 적어도 하워드 훅스(Howard Hawks)의 『칼자국이 있는 얼굴』(Scarface)에서 맥주업의 갱단들이 술집주인들에게 자기네 물건만을 받으라고 강요 협박하는 분위기는 《아르투로 우이의 저지 가능한 상승》에서 찾을 수가 있다.
또한 브레히트가 찰리 채플린의 히틀러 영화 『위대한 독재자』 (The Great Dictator)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 영화가 1940년 10월 14일 첫 상영 된데다 그 시기에 핀랜드에서 상영되었을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언급된 프레드 파슬리는 1931년 알 카포네의 전기 『Al Capone : The Biographie of a Self-Made Man』을 출간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파슬리는 갱 두목 알 카포네를 자수성가한 인물로 평가했고 당시의 거물 경제인들이던 록펠러, 포드, 모건등과 비유했다. 《아르투로 우이의 저지 가능한 상승》이 이 전기를 세밀한 부분까지 모방하고 있음은 젤리거(Helfried W.Seliger)에 의해 증명되었다. 경찰 매수, 외견상으로는 건실한 사업체와의 유착, 합법성의 미명하에 불법을 자행하기 위해 특정한 법률조항과 법칙들을 만들도록 정치가들을 협박하는 등의 수법을 통해 암흑가를 장악한 알 카포네의 경제적 상승이 히틀러의 정치적 상승과 기막히게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결국 알 카포네의 전기와 《아르투로 우이의 저지 가능한 상승》의 공통된 명제는 정치와 경제가 유착하는 시민 자본주의의 경제 시스템은 공공연하게 국수주의로 변하는 경향을 띄기 때문에 파시즘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르투로 우이의 저지 가능한 상승》은 실제 모델을 가지고 우화적으로 나치, 히틀러의 역사를 그렸다.
◈ 작품특징
브레히트의 국내 초연작 ‘달수의 저지 가능한 상승’(이하 달수)
‘아르뚜루 우이의 저지 가능한 상승’은 브레히트의 미국망명 초기의 작품으로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무대에 오른다. 한양대학교 연극과에 의해 한번 올려 진 경험은 있지만 일반 연극관객들을 대상으로 초연이다.
작년 브레히트 서거 50주년을 기념하여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이 연희단 거리패(이윤택연출)와 극단 청우(김광보 연출)에 올려지고 ‘서푼짜리 오페라’가 예술의 전당 정통연극시리즈로 기획 공연되기도 하였으나 ‘아르뚜르 우이’의 경우는 몇 번의 초청공연의 시도가 있었으나 국내에서는 한 번도 선보인 적이 없는 작품이다.
민족극 계열로 창작극만을 고집하던 극단 아리랑이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연극의 새로운 패러다임 안에서 ‘거창하지 않은 권력 사슬’을 끄집어내어 관객들과 인간의 기본적 욕구와 관련된 소통을 자리를 마련하고 싶은 것이다.
누구에게 존재하는 자기 상승의 욕구. 이를 저지하려는 사회적·물리적 힘에 대해서 함께 고찰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답은 관객들의 몫일뿐이다.
브레히트의 서사극적인 요소와 극단 아리랑의 신명과 해학이 넘치는 인간풍자가 어떻게 엉키어 들어가는지는 극장 안에서만 확인 가능 할 것이다.
2002년 브로드웨이 ‘The Resistible Rise&Fall of Arturo Ui’

2001년 9.11 테러가 있고, 1년이 지난 시기 브로드웨이에서 올려진 ‘아르뚜르 우이의 저지 가능한 상승’
알파치노가 아르뚜르 우이로 분하여 주목하였던 이 공연은 당 이라크 전쟁의 한창이던 시절 브레히트의 표현 기법을 충실히 따르면 전세계 최고의 권력자를 무대 위 영상으로 담아냈다. 19세기의 히틀러에 빗대어 21세기의 권력자 조지 부시를 조롱한 것이다.
2007년 3월 대한민국. 권력에 대한 욕망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시간과 공간의 공유를 극대화한다.
지금 이 순간 무대에 서있는 배우는 바로 당신 옆에 서 있는 또 다른 관객과 다르지 않다. 배우들은 자신들의 실제 경험담을 쉼없이 이야기하며 공연은 시작된다. 누가 관객이고 누가 배우인지 구별 없이 시작된 무대와 객석은 하나의 전시장이며 일상의 공간이기도 하다.
건달 달수와 배추조합 상인들
가벼운 배우는 있어도 가벼운 역할을 없다고 한다. 배우뿐 아니라 우리들 또한 우리 인생의 주연으로서의 역할이 존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달수네의 인물들은 ‘나와 너’, ‘우리’도 아닌 일반적인 자기 욕망에 근거하여 움직임과 대사들을 지배하며, 사건과 음모를 생산해내고, 배신과 결탁을 공유해간다.
관객들은 연극 속 인물들을 통해 나와의 연관성과 내 주변들의 관계성. 늘 존재하지만 인식하지 못한 부분들을 함께 찾아갈 것이다.
젊은 스탭들의 새로운 도전
적지 않은 나이에 연출로 데뷔하는 김수진(36세)은 기간의 조연출과 협력연출을 통한 작업에서 호흡을 맞춘 젊은 무대 스탭들을 모아냈다. 기간의 경험과 열정이 한데 뭉쳐서 무대 위 큰 에너지로 승화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무대 위 공연이 어떻게 올려 질지는 이들 젊은 예술가들을 퍼즐 맞추기의 성공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주목할 지점은 쉽게 가볍지 않고, 너무 노련하지도 않은 이들의 열정과 노력이다.
◈ Staff
무대 디자인 : 김용현
샤이닝 시티, 늘근 도둑이야기, 마르고 닳도록, 거기
음악감독 : 최정배
가극 금강, 장강일기, 노동의 새벽, 팔만대장경, 해상왕장보고
안무, 움직임지도 : 최아름
뤼시스라테, 격정만리, 까마귀 그 시선, 꼭두별초
의상 : 김지연
오페라 마술피리, 귀족놀이, 산불, 격정만리, 덫-햄릿에 대한 명상
분장 : 김진숙
격정만리, 천상시계, 첫사랑, 대한민국 김철식, 나비
기획 : 오준석
나비, 천상시계, 줄리에게 박수를, 정약용프로젝트, 과학연극 산소외
◈ 작. 연출
작 - 베를톨트 브레히트 (1898-1956)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 살아남는 자의 슬픔 에서
연출. 각색 김수진 - 극단 아리랑
- 1997년 극단 아리랑 입단. 다수의 작품에서 조연출과 창작작업 참여
- 아리랑 20주년기념공연<격정만리>협력연출 , 창극<시집 가는 날>드라마투루그 외
이 작품은 ‘개인적 욕망의 권력 획득에서부터 파멸까지의 과정 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권력에 따른 행동변화에 주에 근거한 권력의 미래는 파멸이다’라는 지극히 단순한 주제를 가지고 있다. 권력에 대한 집착은 사회적 악을 만들어내고 또 악을 감추기 위해 잘못된 권력을 행사한다.
권력관계를 들춰내는 일은 ‘나’를 포함한 인간을 관찰하는 일이다.
권력을 획득해가는 과정과 그것을 잃어가는 과정을 김달수의 상승과 강독구의 파멸로 극명하게 대비시켜 권력의 무상함을 부각시키고자한다. 에필로그와 프롤로그에서 배우들의 실화를 통하여, 시간과 공간의 공유를 명확히 함으로써 극의 내용이 나와는 관계없는 권력다툼의 이야기가 아니라 좀 더 현실적인 것으로 다가가도록 한다.
◈ 출연진
2002년 미국의 브로드웨이에서는 ‘아르뜨루 우이의 저지 가능한 상승에서’ 알파치노가 주연을 하였다고 한다. 전 출연진의 미래 또한 끊임없는 자기 상승의 욕구속에서 좋은 배우들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한동규(달수)
정약용 프로젝트, 천상시계, 대한민국김철식, 라이어3, 손님 외
남문철(강독구)
지하철1호선, 천상시계, 인당수사랑가, 가극 금강 외
김신용(지중호)
서푼짜리 오페라, 꼭두별초, 천상시계, 가극 금강, 정약용 프로젝트 외
조현숙(박복자)
홍도야 우지마라, 사랑아 달려, 대한민국 김철식 외
김미영(편집장 부인)
홍도야 우지마라, 나비, 사랑아 달려 외
김보영(수자)
나비, 천상시계, 사랑아 달려, 정약용 프로젝트 외
권태진(마석두)
첫사랑, 천상시계, 꼭두별초,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외
김종선(허영태)
첫사랑, 정약용 프로젝트, 사랑아 달려, 천상시계 외
유리야(강독구의 딸)
첫사랑, 사랑아 달려, 천상시계 외
김경미(주기자)
첫사랑, 사랑아 달려, 천상시계 외
김현준(오경필)
천상시계, 사랑아 달려 외
김어진(조사관) / 장효상
◈ 극단 아리랑
“아리랑이라는 조각배를 띄운다. 이 배가 순조롭게 떠갈지, 암초에 부딪칠지, 길을 잃어 떠돌지, 폭풍우에 뒤집힐지 아무도 알수 없는 일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선원들 모두가 익사 할 때까지 , 또 이 배가 다른 배로 바뀌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의 항해는 계속될 것이다.”
위의 글은 1986년 극단 아리랑을 창단할 당시 김명곤 대표가 ‘창단공연에 부치는 말’에 쓴 것입니다. 극단 창단을 기념하는 글로는 너무 비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과거를 돌이켜보면 암초도 만났고 폭풍우도 만났으며 길을 잃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던 때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래도 우리의 항해는 계속되었습니다.
극단이 20년이 넘게 꾸준히 창작활동을 했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과거를 자꾸 돌아보게 됩니다.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가까울수록 과거의 추억으로 산다고 하지만 우리는 미래가 무한정 남아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치열했던 창작의 열정, 시행착오 등은 우리에게 좋은 밑거름입니다. 때문에 극단 아리랑의 과거회상은 미래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극단 아리랑은 새로운 항해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앞으로의 여정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또 항해를 무사히 마치고 ‘꿈의 섬’에 도착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영원히 안착하지 못하고 ‘꿈의 섬’을 찾아 항해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숙명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처음의 다짐처럼 ‘우리의 항해는 계속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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