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훈이가 그림을 그리고 회사원 철학박사 강유원이 글을 적은 책이 나왔습니다.

“자신이 프롤레타리아인데도 그걸 모르는 사람은 뜻밖에도 많다. 회사에서 가장 얄미운 사람이 누군가. 사장도 아니면서 사장 마인드 가진 팀장, 사장보다 더 사장스러운 사람, 회사에는 사장과 사장 아닌 사람밖에 없는데 사장도 아니면서 회사 입장에서 생각해보자고 하는 사람들이다. 자기의 객관적 위치를 알지 못할뿐더러 남이 그 위치를 알려줘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 그리고 부르주아는 이런 사람들을 적절히 활용한다 - 본문 163쪽에서

물건을 만드는 과정에서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한 노력들이 들어간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기술이 발전하고 그에 따라 기술적 역동성이 증가한다. 그 다음에는? 노동력 잉여가 발생한다. 그 다음에는? 사람이 잘린다. 여기서 기술과 노동 사이에 적대가 생겨난다. 이렇게 생겨난 노동잉여를 가리키는 아주 멋진 말이 있다. 그건 바로 산업 예비군이다. 흔히는 실업자라고 한다. 실업자가 늘어났다는 것은 아주 많은 수의 대중이 가난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 본문 149쪽에서”

강유원의 고전강의 공산당 선언 구매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02451X

2.그리고 mp3로 그 강의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강유원의 공산당 선언 강좌

http://armariuscasting.net/?m=200603

재미 있고 그외 이 사이트 전체 http://armariuscasting.net 처음으로 들어가면 매주 업데이트되는 서평들도 재미있습니다.

3. 강유원 소개

“오늘날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은 손에 물 묻히기를 싫어하며 힘있는 자에게 지식을 팔고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며 기생한다. 지식인들이 기득권자의 편을 들고 이들의 노예로 전락하는 이유다. 나는 영주에게 아부하며 기생하는 르네상스식 지식인이 아니라, 기도와 학문과 노동을 병행하며 자급자족한 중세 수도원의 수도사와 같이 건강한 지식인이 되기를 원한다.

.....

평생 안경알을 갈면서 철학사에 한획을 그은 스피노자를 보라. 어느 대학 교수는 그런 스피노자가 부럽다고 했다. 하지만 그에 게 나는 ‘말로만 스피노자를 부러워하지 말고, 안경사 자격증을 따라’고 말해주고 싶다. - 강유원 - ”

*강유원에 대한 소개글과 그와의 인터뷰

출처 : http://alster.egloos.com/349805

문득 '바쳐야 한다'는 노래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배웠던 생각이 난다. 심수봉의 노래도 몇 곡 정도는 외워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사랑도 인생도 퇴행해서는 안될 것이다. 긍정적 힘을 찾자.

사 랑 (강유원)

심수봉의 <사랑밖에 난 몰라>는 고비를 넘겨 젖히는 가락도 가락이지만 노래말이 참 청승맞다. 심수봉이나 되니까, 아니 산전수전 다 겪은 심수봉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말이요 가락이다.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그가 부르니 노래가 되는거다. “얼굴도 아니 멋도 아니 아니, 부드러운 사랑만이 필요했어요.” 껍질이니 뭐니 필요없다는 거다. 부드러운 사랑만 있으면 된다는 거다. 사랑은 유치한 거라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그것에 닥치면 이렇게 애원한다. “서러운 세월만큼 안아주세요… 당신없인 아무것도 이젠 할 수 없어.” 멀쩡한 사람을 그렇게 청승맞고 유치하게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의 힘이다.
사랑에는 긍정적인 힘만 있는 게 아니다. 모든 걸 쓰러뜨리는 허무성도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행하는 모든 짓의 끄트머리에는 죽음이 있다. 너무도 빤한 이야기가 되겠는데, 사람이 하는 짓의 궁극 목적은 죽음이라는 말이 여기서 성립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죄다 죽자고 하는 짓인 게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니 사랑도 죽자고 하는 짓이겠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목숨을 던져야 한다. 뭔가를 사랑한다면 몸을 바쳐야 한다. 아무것도 바라서는 안 된다. 이것저것 따지고 자시고 할 거 없이, 너로 하여 덕보자는 생각없이, 네 탓에 좋은 세상 살아보자는 맘없이 그냥 그를 위해, 그것을 위해 콱 죽어버려야 사랑하는 것이다. 죽음을 목적으로 하는, 죽음은 없음이니까 목적이 없는, 무목적적 행위가 사랑이다. 그를 위해, 그것을 위해, 콱 죽어버리는 것은 사랑의 허무성을 몸에 새겨넣는 일이다.

사랑의 긍정적 힘과 허무성이 합해져서 사랑의 숭고함을 만들어낸다. 수많은 사랑 노래, 사랑 이야기, 사랑영화는 숭고함의 한 자락을 체험케 한다. <감각의 제국>의 절정의 장면을 떠올려보자. 그가 눕는다. 그가 위에 앉는다. 그는 그의 목을 조른다. 그는 숨이 막혀간다. 그는 죽어간다. 그는 그를 위해 죽는다. 그들은 죽음의 순간을 사랑의 순간과 기어이 일치시키고 마는 최고의 행위를 완성한다. 끝은 목적이고 완성인데, 사랑하는 이를 위해 그 끝을 써버렸으니 삶을 제대로 끝장낸 것이요, 래디컬하게 완성한 듯하지만 한명이 살아 있으니 절대적 완성은 아니다. 그래도 살아남은 그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누군가가 자기만을 위해 콱 죽어버리는 것을 바로 눈앞에서 보았으니.

장만옥과 양조위가 보여주는 사랑- <영웅>이 사랑영화라는 건 아니다. 하나의 계기만 가지고 규정하자면 <영웅>은 활공영화일 수도, 호수영화일 수도, 바둑영화일 수도, 서예영화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규정하자면 다른 걸 부정해야 하므로 전체적 규정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은 절대적 사랑에 거의 합치한다. 물론 칼이 짧거나 둘 중 한명의 몸이 두꺼웠더라면 그 완성이 어려웠을 테지만.

아무런 이유없이 그것을 위해 죽어버릴 수 있는 것, 그것은 달리 말하면 순수다. 세상 사람들이 순수문학으로 분류해주는 문학을 한다고 해서 순수 문학자가 아니다. 문학말고는 할 게 없어서, 문학밖에 몰라서, 문학 때문에 망가져야, 문학을 위해서 콱 죽어버려야 문학을 사랑하는 거고 순수 문학자인 것이다.

순수학문이라는 철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순수성이 보장되는 게 아니다. 공부한다고 나서는 이들이 그것을 위해 콱 죽어버리는 실천은 고사하고, 죽는 시늉이라도 할 생각은 않고, 그걸 가지고 돈을 벌어볼까, 권세를 얻어볼까, 이름을 날려볼까 하면 그는 불순하게 순수학문을 하는 셈이요, 이런 자들이 천지에 널린 탓에 순수학문이 죽어간다. 말장난 아니냐고? 아니다. 순수학문 다 죽는다고 분신한 학자는 없다. 말로만 글로만 촉구하지 몸으로 항거하지 않는다. 순수학문을 위해 콱 죽어버리지 못하는 거다. 이럴 바에는 혼자 즐기자고 학문한다고 하는 게 낫고, 돈벌자고 공부한다고 떠드는 게 낫고, 돈벌이 따로 공부 따로 하는게 차라리 깔끔하다.

대답은 정해졌다. 소설을 사랑한다고? 소설을 위해 콱 죽어버려라. 학문을 사랑한다고? 학문을 위해 콱 죽어버려라. 영화를 사랑한다고? 영화를 위해 콱 죽어버려라. 그를 사랑한다고? 그를 위해 콱 죽어버려라. 조국을 사랑한다고? 글쎄… 누군가 솔범수범할 때까지 기다려라. (강유원/ 회사원·철학박사)

강유원 박사는 누구?

‘철학적 탐구’라는 부제가 붙은 강유원 박사의 최근 저작 ‘서양문명의 기반’은 헤겔과 마르크스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서양 문명사를 조망하고 있다. 역사서로는 이례적으로 삶의 자세를 돌아보게 하며 진한 감동도 준다.

강박사는 철학 입문 당시 1600쪽이 넘는 요한네스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상·하권을 50번이나 정독하고 학위를 받은 뒤를 포함, 모두 11년간이나 헤겔 원전강독 강의를 계속 들었다. 최근 여러 매체에 기고하는 글이나 일련의 저작과 강의를 통해 선보 이는 그의 뒷심은 이런 고집스런 공부 결과다.

최근 ‘씨네21’의 고정 칼럼니스트로 독자들의 찬사를 받고 있 는 강박사의 실력은 해방 이후 최고의 번역이라고 평가받은 ‘장미의 이름’(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을 다 시 고쳐 쓰게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책을 옮긴 이윤기씨는 ‘장 미의 이름’ 2000년 판본 후기에서 “강 박사가 A4용지 60쪽 분 량의 원고를 보내 번역이 잘못된 300여군데를 지적했다”며 “그 중 260곳을 손보아 새로운 판본을 내놓는다”고 밝힌바 있다.

회사원 철학자가 있다. 철학자 강유원(42)박사는 한 회사의 웹마스터다. 그러나 그는 90년대 말 계간 ‘현대사상’, 최근엔 ‘씨네21’의 고정 필자로 인기를 끌었고 지금도 꽤 많은 열혈독자를 가지고 있는 철학자다.

올들어 80여권의 책을 도발적으로 평한 서평집‘책’(야간비행) 을 쓴 것에 이어 최근 ‘서구문명의 기반’(미토)이라는 제목의 대중철학서도 내놓았다. 그는 글을 쓸 때 굳이 자신이 회사원임 을 강조한다. 어느 학자 못지않게 공부하기를 좋아하지만 제 공 부를 이용해 밥 벌어 먹지는 않겠다는 자의식의 표현이다.

하기는 ‘철학함’이 밥벌이가 된것은 근대 대학제도가 자리잡으 면서부터다. ‘밥과 학문의 공존’은 지배계급의 논리를 재생산 하는 창구로서 학문을 만든다는 비판도 받는 마당이다. 실제로 스피노자는 안경알을 깎아서 밥을 벌어먹었고, 노자(老子)는 도서관 사서로 생활했다.

최근 펴낸 ‘서구문명의 기반’이란 책으로 다시 마니아들을 열 광케 하고 있는 ‘회사원 철학자’ 강박사를 지난 13일 만나, 그 의 일과 공부의 길에 대해 들어 봤다. 어쩌면 강박사가 걷고 있 는 길은 직업환경과 사유방식이 급격히 변하고 있는 21세기 한국 사회의 ‘철학하기와 밥 벌어먹기’의 한 방식을 보여주는 사례 가 될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대학 교수되기를 포기했는가.

“90년대초, 학위 받고 난 직후 서너차례 ‘교수 초빙’에 응했 다. 그러나 그게 실은 ‘교수 채용’이었고, 여기에 계속 응하는 것은 스스로를 대하는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때부터 제도적인 방법으로 교수되는 것은 포기했다.”

―제도적인 방법이라니.

“학회에 열심히 나가고, 학회지에 논문써서 그걸 들고 다니며 대학교수 ‘채용’에 응하는 것.”

―그럼 논문은 안 썼는가.

“이것 저것 짜깁기해 논문쓰기보다 급한 것은 진짜 공부하는 것이었다. 전공이 헤겔의 사회정치 철학이다보니, 인접 학문에 대한 책읽기의 필요성이 더했다.”

―지금 직업이 웹마스터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슨 말인가. 내 직업은 학문이다. 소명으로서의 직업과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직업을 구분하자. 내 생계 수단은 웹마스터이나 소명은 학문이다.”

―왜 학문이나 글쓰기로 생계를 해결하지 않는가.

“오늘날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은 손에 물 묻히기를 싫어하며 힘있는 자에게 지식을 팔고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며 기생한다. 지식인들이 기득권자의 편을 들고 이들의 노예로 전락하는 이유다. 나는 영주에게 아부하며 기생하는 르네상스식 지식인이 아니라, 기도와 학문과 노동을 병행하며 자급자족한 중세 수도원의 수도사와 같이 건강한 지식인이 되기를 원한다.”

―말은 좋지만, 요즘처럼 전문화한 시대에 그게 가능한가.

“평생 안경알을 갈면서 철학사에 한획을 그은 스피노자를 보라. 어느 대학 교수는 그런 스피노자가 부럽다고 했다. 하지만 그에 게 나는 ‘말로만 스피노자를 부러워하지 말고, 안경사 자격증을 따라’고 말해주고 싶다.”

―주간에 회사에 다니고, 야간에 강의하면 공부와 글쓰기는 언제 하는가.

“매일 밤 9시부터 새벽 3시까지를 공부하는 시간으로 정해두었 다. 4시간은 자야 하니까 더 이상 공부하지 못하는데, 회사원으 로 학문하는 사람의 한계다.”

―그럼, 대학에서 오라고 하면 갈수도 있다는 말인가.

“ ‘채용’에는 응하지 않겠지만 ‘초빙’은 받아들일 수 있다.”

―이번에 내놓은 ‘서양문명의 기반’은 대학 교양학부의 강의를 정리했다고 했는데, 책도 그렇거니와 교양학부의 강의가 그 정 도라니 대단하다.

“학생들이 학문하기를 싫어한다거나 인문학이 위기라거나 하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난 취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강의를 하면서, 과제물을 많이 내주고, 학점을 짜게 주는 것으로 소문나 있다. 그런데도 학생들은 오히려 이를 즐기며 찾아왔다.” 그는 이번 학기 역시 취업에 도움이 되지않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텍스트로 강의를 진행중이다. 수강생 중 졸업 생이나 대학원생, 타대학 학생들이 20%를 넘을 정도로 호응도 좋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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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8 13:53 2006/08/28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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